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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마리아의결혼/라파엘로산치오

추억66 2009. 8. 5. 09:21

라파엘로

“하늘은 때로 대개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고귀한 재능과 무한한 부를 한 사람에게 모두 부여하는 관대함을 보이기도 하는데, 우르비노 출신의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1483~1520)가 바로 그러한 경우이다.” 1568년 조오르지오 바사리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사열전에서 이와 같은 문구로 라파엘로의 전기를 시작했다. 예술가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가졌던 라파엘로는 고전의 신화를 소생시키고자하는 열망이 팽배했던 시대의 상징으로 페루지노,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 거장들의 화풍을 적절하게 흡수하여 르네상스의 미술을 완성단계로 이끌었다.

 

[성모 마리아의 결혼](1504)은 그가 수련 기간 동안 그린 마지막 작품으로 시타 디 카스텔로(Città di Castello)의 산프란체스코 교회에 있는 산주세페 예배당의 패널화로 제작되었다. 원근법과 안정감 있는 구도, 조화로운 색감을 통해 평온한 감흥을 일으키는 이 작품의 특징적 요소는 페루지아의 두오모를 위해 그려졌던 페루지노의 제단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분명하다. 아치들이 반복되어 있는 신전의 둥근 열주는 화면에 운동감을 부여하며, 반원형태로 배치된 전경의 인물들에서도 반복되어 화면에 통일감을 부여하고 있다. 러나 당시 갓 스물을 넘은 젊은이였던 라파엘로는 대담하게 화면 속 신전의 중앙 아치 위에 RAPHAEL URBINAS MDIIII라는 서명과 날짜를 적어넣었으며,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1416~1492)풍으로 인물과 공간과 건축을 조화롭게 연출함으로써 이미 스승을 능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스승 페루지노가 1500-1054년에 그린 [성모의 결혼]과 비교해보면, 라파엘로는 페루지노보다 공간을 더 잘 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신전은 페루지노의 작품에서보다 계단이 더 많은 기단 위에 세워져 있고 인물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만 더 크게 보인다. 뿐만 아니라 두 작품 속에는 같은 수의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라파엘로가 페루지노 보다 공간과 인물을 더 조화롭게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요셉은 중앙에 사제를 두고 마리아에게 반지를 끼워주기 위해 나서고 있는 반면 마리아는 소극적으로 손을 내밀고 있는데, 요셉이 들고 있는 나무 끝에는 백합 꽃이 피어 있어 그가 마리아의 짝임을 상징한다. 다른 남성들은 절망한 듯한 표정을 하고 있고 특히 앞의 남자는 막대기를 부러뜨리고 있다. 사이의 간격은 스승의 작품에서보다 여유로운 공간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서 있는 사제와 손이 닿기 전에 뻗쳐져 있는 그들의 팔은 우아하게 표현되어 있다. 또한 인물들 뒤에 기하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길을 통해서 보는 이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후경으로 이동시키고 있으며, 전경의 인물들의 반원구도는 신전 열주의 반원과 연결되면서, 화면전체에 원형의 운동감을 주고 있다.

  

 

 

배경에 보이는 건축물도 눈길을 끄는 요소이다. 라파엘로와 페루지노가 이 작품들을 제작할 때 그들이 과연 브라만테(1444~1514)의 [템피에토](1502)를 알고 있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적어도 브라만테처럼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코의 패널화 [이상 도시]는 분명 알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새롭게 설계된 도시 공간에 대한 초기 르네상스의 관심을 보여주는 [이상 도시]가 균형있고 뛰어난 조화를 이루면서도 건축물의 육중한 부피감을 결여하고 있는데 반해 브라만테는 이것을 재발견하였으며 라파엘로는 그 영향을 받으며 건축을 연구하고 영향을 받아 한걸음 나아갔음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전성기 르네상스 고전주의 미술을 완성의 단계에 끌어올렸던 라파엘로 특유의 평온함과 우아함 그리고 개방적인 공간 처리, 짜임새 있는 구도 균형감각, 통일감, 인격이상이 달성된 이상적 인물표현을 통해 지나침없이 절제되고 조화를 이룬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라파엘로 산치오 Raffaello Sanzio (1483.4.6 ~ 1520.4.6)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더불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3대 거장으로 불린다. 궁정시인의 아들로 태어나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11세 때 아버지마저 잃어 사제인 숙부 밑에서 자랐다. 시인이며 화가였던 아버지에게서 그림을 배우다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움브리아파의 지도자인 피에트로 페루지노 공방에서 도제 수업을 받았다. 피렌체에서 몇년간 그림을 그린 라파엘로는 1508년 로마로 건너갔으며 교황 율리우스2세를 위하여 바티칸궁전 내부에 있는 서명실의 벽화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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