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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학당/라파엘로

추억66 2009. 8. 5. 09:19

라파엘로

라파엘로의 전 작품중에 가장 유명한 작품이며 바티칸의 명화중의 명화로 뽑히는 이 그림은 진리는 인문 과학을 기반으로 한다는 르네상스의 사상을 그림을 통하여 알려 주고 있다. 이 작품은 1510년 후기에 시작하여 1511년 중반에 완성된 작품으로 밑변이 약 820cm이다.

 

 

거대한 로마 시대의 건축물 그리고 원근법으로 구현한 공간의 깊이

 

고대 그리스의 철인, 학자들이 학당에 보여서 인간의 학문과 이성의 진리를 추구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 모임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은 인간 역사상 가장 고귀한 정신을 보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이들은 중세 스콜라 철학 이후 계속 되어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르네상스기에 급속히 확대된 플라토니즘과의 대비 및 조화라는 당시의 사상 동향을 상징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을 라파엘로는 두 사람의 철인에 의해 조형적으로 훌륭하게 나타내고 있다. 관념세계를 대표하는 플라톤은 손으로 하늘을 지칭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팔을 올리며 과학과 자연계의 탐구를 상징하고 있다. 그 주변에는 제자들이 둘러싸고 있으며 그 아래 계단 한가운데에 누워 있는는 인물은 무욕의 철학자 디오게네스이며, 화면의 우측 전면에는 콤파스를 들고 네 명의 제자와 연구하고 있는 그리스의 기하학자 유클리드가 있다. 이와 대칭되는 좌측에는 피타고라스와 그 제자들을 볼 수 있다. 기타 저명한 학자, 위인들이 등장되고 있는 이 그림은 로마 시대의 건축 구조가 틀이 되어 단계적인 공간의 깊이와 그 전개를 보이며, 무대 장식과 같은 구도를 보이고 있다. 이것 또한 고대 세계의 재조합물이지만 예술을 형상화한 [파르나소스] 같은 심미적인 따뜻함이 아니라 학문과 이성의 특성같이 투명하게 정제된 수정 같은 느낌을 준다.

 

 

배경과 공간의 광대함은 철학자들이 지은 지적인 구조물을 상징한다


이 그림은 전성기 르네상스의 고전적 정신을 완전히 구현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고상하고 세련된 기존의 그의 작품과는 다르게 관람자를 압도하는 웅장함을 느낄수 있는 데 이는 이 벽화를 제작할 때 그가 브라만테의 도움으로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정화를 보았기 때문이며 덕분에 이전의 작품과는 다른 표현력과 늠름한 육체나, 극적인 군상 구성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러나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의 동태나 자세의 표현법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양식에 동화시켜서 육신과 영혼, 동작과 감정의 조화있는 균형을 나타내었다. 그리하여 이 대 집회에 참가하고 있는 모든 인물들은 각각 훌륭하고 뚜렷하게 자기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또 배경에 있는 높은 도움과 원통형 궁륭과 거대한 조상은 기하학적 엄밀성과 장대한 공간을 형성하여 이 모임의 정신적 에너지를 더 높이고 있다. 그러므로 이 배경과 공간의 조화와 광대함은 이곳에 살고있는 철학자들을 테두리 일 뿐만아니라 그들이 지은 지적인 구조물의 상징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건축물은 형태와 개념에서 신학을 형상화했던 그의 또다른 벽화, [성체논의]의 가공의 천상 건축물과 대조되기도 한다.

 

라파엘로는 [파르나소스]의 경험을 토대로 철학자의 군상을 소그룹으로 분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파르나소스]보다 더 위대한 내부적 다양함을 가진 구도로 실현되었으며 [성체논의]보다 더 최종적으로 웅대한 안정감을 갖는다. 그러므로 이 [아테네 학당]은 라파엘로의 모든 작품중에서도 백미일 뿐만아니라 르네상스 시대의 장려양식을 완성시킨 역사적인 작품으로도 이름이 높다.  화면의 오른쪽 인물군 가장자리에 그는 검은 모자를 쓰고 우리를 응시하는 자신의 초상을 살짝 그려놓았다. 이 걸작을 그려내고도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진부한 경구를 되뇌이게 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라파엘로 산치오 Raffaello Sanzio (1483.4.6 ~ 1520.4.6)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더불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3대 거장으로 불린다. 궁정시인의 아들로 태어나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11세 때 아버지마저 잃어 사제인 숙부 밑에서 자랐다. 시인이며 화가였던 아버지에게서 그림을 배우다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움브리아파의 지도자인 피에트로 페루지노 공방에서 도제 수업을 받았다. 피렌체에서 몇년간 그림을 그린 라파엘로는 1508년 로마로 건너갔으며 교황 율리우스2세를 위하여 바티칸궁전 내부에 있는 서명실의 벽화를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