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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수학, 보는 수학, 생각하는 수학

추억66 2014. 5. 18. 18:00

동·서양 모두 수학은 현실적인 문제와 연계지어 발전해왔다. 그러나 수학은 그것이 개발된 원래 목표와는 전혀 다른 곳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묘한 점이 있다. 현대수학은 르네상스 이래 유럽 여러 나라의 경쟁적인 발전 아래에서 발맞추어 발전되어 왔다. 20세기의 수학 발전의 배경에도 상당 부분 군사·안보적 필요가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삭막한 배경 하에서 발전된 수학이론의 수많은 부산물 중에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많은 문화적 산물이 있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을 매료시키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수학의 목표가 되기도 했다.

피타고라스는 세상 만물이 수로 이루어져 있다는 철학을 발전시켰다. 음악의 화성이 매우 간단한 정수비의 주파수로 이루어진 음들의 조합이라든가, 우리 태양계의 중요한 행성들의 운동이 정다면체와 유사한 성질들을 가진다는 것을 들어 설명하였다.

동양도 마찬가지다. 13세기의 유명한 중국 수학자 양휘(楊輝)는 ‘납음(納音)’이라는 이름으로 음악과 수학의 관계를 형상화했다. 1년의 절기가 주기를 따라 변하며 음악의 음이 서로 화합하고 하는 것은 수치적 규칙성을 가지고 있고 이를 10간 12지와 조합하여 60갑자를 만들어서 한 것이다.

음악에서 듣는 수학

현대에 발전한 수학도 이러한 효과를 여러 곳에서 보이고 있으며 요즘은 음악이나 미술이 수학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르네상스 이후에 발전한 수학의 도움을 많이 받아 바흐(Bach)는 그리스 시대부터 사용되던 순정화음에 따른 음의 조율방법 대신에 로그 스케일에 따른 조율방법인 평균률을 도입하였다. 그 덕분에 바흐는 그 이전에는 제대로 연주하기 힘들었던 변화하는 조를 따른 음악들을 많이 작곡하였다. 대표적인 것으로 바흐의 푸가가 있다.

바흐의 음악들은 한음한음의 변화가 매우 규칙적이고 전체적으로 반복과 대칭과 닮음이 매우 많이 사용된다. 그의 음악을 잘 분석해 보면 수학적 구조라고 불러야할 많은 수학적 규칙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중에는 동일한 주제가 반복하여 조를 바꾸어 변해나가는 것과 심지어는 이러한 변조가 돌고 돌아 원래 조로 복귀하는 순환적인 구조까지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구조를 일반인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명한 호프슈테터(Hofstadter) 교수의 저서 “괴델, 에셔, 바흐”(1979)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명저이다.

앞의 이야기가 개별적 음악의 대칭성에 대한 이야기라면, 아름다운 음악은 통계적으로 많은 규칙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음악에서 나오는 음과 그 바로 다음 음이 몇 도 차이인가를 모두 모아보면 1도가 가장 많고 2도는 그보다 적으며 3도는 또 적어져서 단조감소하는 수열이 된다. 이 감소함수의 지수가 얼마인가를 보면 이 음악의 특징을 알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이 음악이 바로크인가 고전주의인가 낭만주의인가에 따라 특징적인 지수 범위를 가진다고 한다.

미술에 보이는 수학

현대 미술은 그 소재를 우리 주위의 모든 것에서 찾고 있으며 수학도 예외가 아니다. 르네상스 초기부터 그림의 현실성을 높이기 위하여 사영기하학을 연구한 것은 미술가들이었으며 이 효과가 17세기 풍경화의 원근법에 적나라하게 반영되어 있다.

앞에 소개한 호프슈테터 교수의 “괴델, 에셔, 바흐”에는 바흐의 음악 외에도 에셔라는 독특한 미술가의 미술작품을 포함한 많은 미술가들의 작품이 소개되고 설명되어 있다. 예를 들어 초현실주의 미술가 마그리뜨(Magritte)의 작품 중에는 현실을 묘사하는 미술작품을 그린 작품이 여럿 있다.

그림 2의 작품은 실제로 수학을 포함한 학문이 현실을 묘사하는 상황에 맞추어도 딱 맞아들어갈 작품이다. 그의 그림에서 화폭의 바다와 실제 바다를 구별하기 힘들듯이, 우리는 현실의 많은 대상에서 그를 설명하는 (수학 등의) 이론이 그 현실 자체인 것처럼 느낄 때가 많다. 이는 현대수학에 들어오면 더욱 더 그런 느낌을 갖는다.

호베마(Hobbema)의 유명한 풍경화  “미델하르니스의 길” (1689)

호베마(Hobbema)의 유명한 풍경화
“미델하르니스의 길” (1689) ⓒ 위키피디아

마그리뜨의 “인간의 조건” (1935) ⓒ 위키피디아

마그리뜨의 “인간의 조건” (1935) ⓒ 위키피디아

에셔의 “(서로를) 그리는 손들” (1948) ⓒ 위키피디아

에셔의 “(서로를) 그리는 손들” (1948) ⓒ 위키피디아

현대 수학의 발전

그러나 수학적 이론을 염두에 두고 작업한 미술 작가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은 에셔(Escher)다. 에셔는 자신의 그림이나 판화를 디자인할 때 수학자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수학자의 많은 이론을 자신의 작품에 반영하였다. 대표적으로 당시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던 비유클리드 기하의 모델인 원형 쌍곡평면 모델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림 3에 보이는 두 손은 서로를 그리고 있다. 이는 하나의 개체가 다른 것을 묘사하는데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다른 개체는 원래 개체를 묘사하고 있다. 19세기에 수학자들은 사영기하에서 이러한 상황을 처음 발견하였다. 즉 사영기하에서 직선을 묘사하려면 그 직선을 이루는 점을 사용하여 묘사하지만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하나의 점은 그 점을 지나는 직선들에 의해서 묘사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묘사방식은 하나의 1차방정식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서로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수학자들은 이러한 독특한 상황을 ‘쌍대관계(duality)’라고 이름지었다. 에셔의 그림은 이러한 쌍대성이 어떤 개념(대상)과 그에 대한 이론적 설명 사이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관계를 잘 보여준다.

현대 수학을 공부하여 보면 앞의 작품들에서 본 것과 같은 특색들이 중심이 되어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일반인들은 대부분 수학이 계산과 공식의 학문이라고 느끼지만 현대수학은 이보다도 이 배경에 있는 규칙과 모양을 설명하는 학문에 가깝다고 보인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수학은 역사상 처음으로 생각하는 학문으로 거듭났다고 보인다. 어쩌면 그리스 시대 이후에 처음으로 생각하는 학문의 지위를 다시 찾았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 김영욱 교수 (고려대 수학과)
  • 저작권자 2014.05.1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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