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간식·먹거리

식탁 위 멸치의 재발견, 종류별 쓰임새

추억66 2012. 11. 18. 01:59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뱃길은 천혜의 자연 보고에 든 보물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다. 그중에서도 멸치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통영의 기선권현망에서는 4~6월 어족 자원 보호를 위한 금어기를 거쳐 7~12월까지 집중 조업을 한다. 덕분에 요즘 통영항은 쉴 틈 없이 멸치를 나르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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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들에게 친근한 식재료, 멸치

바다에 업을 두고 있는 사람들은 천성이 바지런하다. 해가 뜨기도 전, 멸치잡이 배에 몸을 싣고 바다로 향한 그들은 30분에서 한 시간여 동안 어군 탐지기 등을 이용해 멸치 어군을 확인한 뒤 적당한 곳에 닻을 내린다. 어로장의 지시에 의해 '투망!'이라는 거친 외침이 들리면 넓은 바다에 그물이 펼쳐지고 잠시 후 거대한 바다와 싸움을 하듯 육중한 그물을 끌어 올린다.

하루에 족히 여덟 번은 반복한다는 이 과정을 지켜보면 '멸치도 생선이냐'라는 말은 감히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잡아 올린 멸치를 3초 만에 넓은 판으로 옮겨 즉석에서 삶는다. 육질이 약해 빨리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멸치는 같은 자리에서 잡았다고 해도 간이나 건조 정도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멸치라는 이름은 물 밖으로 나오면 금방 죽는다는 뜻이기도 하고, 물고기의 대명사로 물의 옛말인 미리가 멸로 변했다고도 한다. 행어, 명어치, 열오치, 멜, 멸, 멧치, 열치, 돗자래기 등 이름도 많고 우리나라는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에도 흔한 바닷물고기다. 그러나 멸치는 바다 생태계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존재인 동시에 우리 식탁 위에도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식재료임이 분명하다.

멸치의 종류와 쓰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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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멸치


_아이들에게 먹이기 좋은 사이즈. 주먹밥이나 달걀말이에 사용된다.

2 자멸치

_밑반찬용으로 이용하기 좋다. 간장이나 고추장에 조리거나 볶아서 활용한다.

3 소멸치

_볶음용. 기름기 없는 팬에 멸치와 함께 청주와 맛술을 넣어 중간 불에서 볶아내면 비린내가 없어진다.

4 중멸치

_각종 볶음, 조림 요리뿐 아니라 국물용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5 대멸치

_맛국물 내기용. 찬물에 멸치를 넣고 한소끔 끓인 뒤 불을 낮춰 뚜껑을 연 상태로 더 끓여야 국물 맛이 좋다.

멸치가 식탁 위에 올라오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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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_하루에 여덟 차례 정도 멸치 수확이 이뤄진다. 오늘도 바다 사나이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만선의 꿈을 꾼다.

2

_위판장에는 적게는 200여 개에서 많게는 1000개 종류의 멸치 상자에 각각 번호와 수량이 적혀 있다.

3

_삼태기 위에 쏟아진 멸치는 단 5초 만에 가격이 결정된다.

4

_통영항의 서호시장과 중앙시장에서 신선한 멸치를 만날 수 있다.

취재를 위해 찾은 통영항의 하루는 보통 새벽 3시에 시작된다. 그때부터 오전 7시까지 건조된 멸치가 배에서 위판장으로 운반되고, 경매가 시작되는 오전 9시 20분까지 중매인들은 자신이 구입해야 하는 멸치를 재빠르게 탐색한다. 이윽고 9시 20분. 경매사와 삼십여 명의 중매인, 그리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선주까지 위판장에는 긴장감마저 감돈다.

멸치 상자 중 하나가 무작위로 삼태기 위에 쏟아지고 경매사의 신호와 함께 단 5초 만에 가격이 결정된다.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하루에 거래되는 양만도 많게는 10억원어치에 이른다고. 그 멸치는 곧바로 중매인에게 전달되고, 전국 각지에 배달된다. 아침에 벌어진 사투와도 같은 경매 현장은 보다 신선한 멸치를 공급하기 위함이라는 관계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멸치는 웰빙 조미료의 시작입니다"


남해안의 한려수도에 위치한 통영항에는 우리나라에서 수확되는 멸치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전국멸치생산자단체연합회가 있다. 그곳에서 만난 진장춘 조합장은 멸치야말로 민족의 혼이 담긴 수산 식품이라고 말한다.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멸치는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식품 문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사실 멸치만큼 인위적인 맛이나 가공법이 첨가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 식품도 없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입맛이 없을 때는 밥에 물을 말아 고추장 찍은 멸치를 별미로 먹기도 합니다만 주부들에게는 천연 자연 조미료로서 멸치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고 싶어요.

국물 요리를 즐기는 한국인의 특성상 멸치가 주는 감칠맛은 다른 화학조미료와는 비교할 수 없지요." 그의 설명에 따르면 물고기들은 수온과
플랑크톤, 조류의 방향에 민감한데, 우리나라 바다가 바로 그 좋은 환경을 갖췄다고. 그래서 우리나라멸치는 육질이 좋을 뿐 아니라 영양분도 훌륭하다. 그 귀한 맛을 보존하기 위해 멸치잡이부터 가공까지 약 한 시간에 걸친 모든 과정은 선상에서 논스톱으로 이뤄진다.

통영항에서 유명한 멸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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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는 청정 지역에서만 어획되는 무공해 자연식품이다.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고 내장까지 통째로 먹을 수 있어 다른 어종에 비해 경제적이기도 하고, 피로를 해소시켜 주는 고급 식품이기도 하다. 이곳 사람들의 밥상에는 멸치 튀김부터 멸치를 넣은 달걀말이나 배추멸치국 등 매일같이 다양한 종류의 멸치 반찬이 올라온다.

사진의 밥상에 함께 올린 멸치 젓갈의 경우 갓 잡아 올린 멸치를 깨끗이 손질해 소금에 절여 1년 정도 숙성시킨 뒤 갖은 양념을 더한 반찬이다. 멸치는 무엇보다 짜지 않고, 식감이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게 포인트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따끈한 밥에 세멸치와 참기름 한두 방울, 김 가루를 넣어 비벼 먹는 멸치밥이야말로 밥도둑 아니겠습니꺼." 취재를 도운 전국멸치생산자단체연합회의 치경수 사무국직원의 설명에 저절로 군침이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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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회무침

_갓 잡아 올린 멸치를 손질해 갖은 채소와 함께 초장과 참기름 한두 방울 넣고 후루룩 무치면 뚝딱 멸치회무침이 완성된다. 하지만 그날 잡은 신선한 멸치만 사용해야 하는 메뉴라 운이 좋아야 마음껏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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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부추부침개

_세멸치와 부추, 각종 채소를 넣고 밀가루 반죽을 바삭하게 부쳐낸다. 통영 지방의 법송 탁주와 함께 즐기기 좋다.

기획_이미정 사진_강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