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을 보면 처음 빙수를 맛본 한국인은 고종 때인 1876년 수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김기수일 것 같다. 기행서인 '일동기유(日東記游)'에 일본 왕을 접견한 후 외무대신 등과 식사를 하며 빙수 종류의 디저트를 먹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김기수는 여기서 '유리 술잔에 얼음으로 만든 즙을 담고 계란과 설탕을 넣었는데 맛이 달고 상쾌해서 먹을 만했지만 너무 차가워 많이는 먹을 수 없다…낯선 얼음 음료라며 자세히 설명했는데 얼음을 가루로 만들었지만 전부 얼음즙만 있을 뿐 얼음은 아니다…한 모금만 입에 들어가도 치아가 시리니 어떤 방법으로 만든 것인지 모르겠다'고 기록했다. 설명으로 짐작해보면 빙수 혹은 서양 셔벗의 일종인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얼음 음료로 빙제(氷製)라는 것도 먹었다고 했다. 생긴 모습이 가짜로 만든 산 같으며 오색이 찬란하게 빛난다면서 맛은 달아서 먹을 만하지만 한번 입에 들어가면 폐부까지 서늘해지니 이 또한 괴이하다고 적었다. 오색찬란하다는 것이 빨갛고 파란 색소를 뿌리고 미숫가루를 담았던 옛날 빙수와 상당히 닮았다.
김기수가 '일동기유'에 빙수처럼 생긴 얼음 음료를 신기해하며 기록한 것을 보면 조선 말까지 우리나라에는 빙수가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우리보다 먼저 개화한 일본도 1869년 요코하마에 처음 빙수 파는 가게가 생겼다. 그리고 1887년에 얼음을 갈 수 있는 기계가 발명돼 빙수가 널리 보급됐으니 현대 빙수의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다. 게다가 빙수에 단팥을 얹어 먹은 것은 더 나중의 일이다.
그렇다면 옛날에는 여름철에 얼음을 어떤 식으로 먹었을까. 조선의 양반들은 얼음을 쪼개 화채에 넣거나 혹은 얼음쟁반에 과일을 담아 차갑게 식혀서 먹었다. '성호사설'을 쓴 이익은 얼음쟁반에 신선한 연근과 참외, 과일 등을 담아 먹으며 여름에 더위와 갈증을 달랜다고 했다.
조선 초기 문인인 서거정 역시 '얼음쟁반에 여름 과일을 띄워라/오얏 살구의 달고 신맛이 섞여 있다'라는 시를 읊었고 또 '얼음쟁반에 담은 과일에 치아가 시리다'는 시도 남겼다. 효종 때 활동한 조경이라는 문인도 '동사록(東사錄)'에서 '얼음쟁반에 얼음사탕(氷糖)을 담아서 손님을 접대한다'고 했다.
얼음을 직접 먹은 것도 아니고 쟁반에 담아 과일을 차갑게 만들었으니 여름이면 얼음 수요가 엄청났다. 조선시대에는 한양에 얼음을 저장하는 창고가 세 군데 있었다. 현재의 동호대교 북단인 옥수동의 두모포(豆毛浦)에 있던 동빙고와 한강변의 서빙고, 그리고 왕실 전용의 얼음 창고인 내빙고다.
조선시대 정부의 재정을 기록해 놓은 책인 '만기요람(萬機要覽)'에는 세 곳에 저장하는 얼음의 양이 18만5218정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1정(丁)은 보통 사방 10cm라고 하니까 보관량이 만만치 않았다.
이 많은 얼음을 겨울이면 강변에 사는 백성의 부역으로 채빙한다고 했으니 양반들이 여름에 쓸 얼음을 공급하기 위해 노역에 동원됐던 백성들의 수고가 심상치 않았다.
< 음식문화평론가 >
- [윤덕노의 음식이야기]육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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