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해지자

보기 좋은 ‘킬 힐’이 ‘킬 헬스’

추억66 2010. 7. 21. 17:27

보기 좋은 ‘킬 힐’이 ‘킬 헬스’

엄지발가락 휘고, 연골 약해져… 2010년 07월 21일(수)

화창한 주말, 멋쟁이 여성의 마음은 설렌다. 남자친구와의 데이트를 위해 아껴뒀던 킬 힐을 신고 나갔건만 발바닥 통증 때문에 연신 짜증만 내게 되는데….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남자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로마 시대 정치가 에밀리우스 파울루스는 말했다. “구두를 신은 내 발의 어느 부분이 아픈지 너희 가운데 아무도 모른다”라고. 어떻게 남성이 킬 힐(kill hill)의 엄청난 고통을 알 수 있겠는가.

신발이 자아 상징해

▲ 31센티미터짜리 슈퍼 킬힐  ⓒ텔레그래프

아이러니하게도 하이힐은 원래 남자의 전유물이었다. 중세시대 승마를 할 때 신발이 안장에 달린 발 받침대에 고정이 잘 되길 바라며 승마부츠에 힐을 단 것이 하이힐의 기원이다. 또한 불량한 하수 시설로 인해 길거리 곳곳에 있던 오물을 피하기 위해 하이힐을 신기도 했다. 특히 작은 키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세’가 애용하면서 급속히 퍼지기 시작했는데, 여성들이 신기 시작한 것은 18세기에 들어서였다.

문제는 3~5센티미터이던 하이힐이 시대를 거듭해, 어느덧 10센티미터가 넘는 킬 힐로 변모 한 것이다. 영화 킬 빌(kill bill)의 제목에서 따온 킬 힐은 살인적인 굽높이에도 불구하고 각선미를 돋보이게 해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영국의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지난 5월, 31센티미터짜리 ‘슈퍼 킬 힐’을 소개하며 1200유로(약 175만원)의 고가에도 불구하고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 9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프라다 ‘2009 봄/여름 컬렉션’의 런웨이에 올라선 모델들은 높은 굽을 주체하지 못해 연신 넘어졌다. 한 모델은 결국 쇼 중간에 구두를 벗어들고 워킹을 하기도 했다. 패션가에서는 이를 두고 ‘킬 힐 바이러스’라고 한다. 전문 모델들도 이렇게 쩔쩔매는 킬 힐이지만 우리 주변의 평범한 젊은 여성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울퉁불퉁한 도로와 횡단보도를 걷는다.

이 뿐인가. 많은 직장 여성들은 미국의 TV드라마 ‘섹스 앤더 시티’에 등장한 캐리(사라 제시카 파커 분)가 명품 구두를 하나씩 선보일 때마다 똑같은 제품을 구매해 완판신화를 열었고, 한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슈어홀릭(shoeaholic,구두광)인 ‘신상녀’를 소개해 대중의 시선을 끌었다. ‘사치의 레이디퍼스트’로 알려진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 여사는 무려 3천여 켤레의 구두를 가지고 있던 것으로 밝혀져 세간에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왜 여성은 이처럼 구두에 열광할까. 드라마 ‘꽃보다 남자’ 민서현(한채영 분)의 “좋은 구두는 너를 좋은 곳으로 인도해 준대”라는 대사처럼, 아름다운 구두가 더 멋진 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란 믿음 때문일까. 심리학자들은 구두가 자아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힐이 높을수록 자아가 더 완벽해지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또한 좀 더 키가 커 보이고 각선미를 뽐내기 위해 굽이 10센티미터를 넘는 킬 힐을 즐겨 신는다. 보기에 위태위태하고 발도 아프지만, 아름다움을 향한 여성의 욕망은 그 고통을 능가한다. 그러나 보기 좋은 킬 힐은 건강에 각종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다.

엄지발가락이 휘는 무지외반증

▲ 엄지발가락이 새끼발가락 쪽으로 꺾여 휘는 질환, '무지외반증' 

우리의 무릎은 가만히 서있는 동안에도 체중의 2배에 달하는 무게에 눌린다. 갑자기 살이 찌면 무릎부터 아픈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굽이 높은 킬 힐을 신는다고 생각해보라. 10센티미터가 넘는 굽을 지탱하느라 체중이 발가락 쪽으로 쏠리게 돼 점차적으로 발가락의 변형을 초래한다. 

결국 뾰족하고 좁은 킬 힐은 엄지발가락이 새끼발가락 쪽으로 꺾여 휘는 ‘무지외반증’을 유발하게 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무지외반증 수술환자는 2004년 1,208명에서 2008년 4,807명으로 5년간 약 4배가 늘었고 이중 여성이 92퍼센트에 달한다.

무지외반증은 발이 평평하고 엄지발가락이 긴 사람에게서 잘 생기는데 초기에는 엄지발가락 내측이 돌출되고 빨갛게 달아올라 통증을 느끼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해버린다. 하지만 지속되는 경우엔 엄지발가락이 둘째 발가락 밑으로 들어가거나 다른 발가락의 변형까지 일으키게 된다. 발바닥 신경이 뭉쳐 발 앞쪽 부위까지 통증이 퍼지기도 한다.

이 통증 때문에 보행시 엄지발가락이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없어 뒤뚱거리며 걷게 된다. 이런 보행자세가 계속되면 발목과 무릎, 허리에 과한 힘을 줘 허리통증이 유발되는데, 이로 인해 척추가 비정상적으로 굽을 수 있다.

무지외반증 초기에는 볼이 넓은 신발이나 보조기를 이용해 치료를 시도해 볼 수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완치가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무지외반증의 치료는 수술 치료가 주를 이루는데 최근 들어 수술기법의 발달로 연부조직뿐만 아니라 뼈에 대한 술식도 동반돼 재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연골 약해져 연골연화증 초래

▲ 연골연화증은 연골이 원래의 강도를 잃어 충격을 흡수하는 기능을 못하는 상태로 연골 표면과 내부가 약해져 생기는 증상이다. 

번잡한 출근길, 버스 정류장에서는 버스를 향해 뛰어가는 킬 힐의 여성들이 종종 보인다. 결국 버스의 빈자리를 차지하며 여성은 만족하지만 얇은 젓가락 같은 굽에 의지해 뛰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우리가 걸을 때는 발꿈치가 지면에 닿는 순간 발 전체로 무게가 고루 퍼져 그 충격이 감소된다. 그런데 높은 굽의 킬 힐을 신으면 휘청거리는 걸음걸이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무릎과 발목 관절에 무리한 힘을 주게 된다.

특히 뛸 경우, 20퍼센트의 무게가 더해지게 된다. 예를 들어, 몸무게가 70킬로그램인 사람이 살짝 점프만 해도 약 85킬로그램의 하중이 실리므로 관절에 갑작스런 충격을 준다. 서승표 정형외과 전문의는 “필요 이상의 힘을 받은 관절은 연골연화증을 초래하는데, 이를 방치하면 골 관절염과 퇴행성 관절염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골연화증은 연골이 원래의 강도를 잃어 충격을 흡수하는 기능을 못하는 상태로 연골 표면과 내부가 약해져 생기는 증상이다. 서 전문의는 “초기에는 연골이 말랑하게 연해지면서 변질되고 차츰 연골 표면이 닳아 결국 말기에는 연골이 소실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게다가 무릎과 고관절(엉덩이 관절)의 무력감을 동반해 운동을 하면 통증이 더 심해지고 특히 층계를 오르내리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따라서 운동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운동을 쉴 수밖에 없다. 무릎의 굴신운동(屈伸運動)에 따라 잘 움직이는 슬개골을 누르면서 좌우로 이동시켜 보면, 염발음(사각거리는 소리)이 나는 것도 그 특징이다.

이는 관절경 검사와 관절 조영술 등으로 진단이 가능한데 치료는 대개 수술이 아닌 보존적 요법으로 시행한다. 초기에는 핫 팩으로 찜질하고 보조기를 이용해 무릎을 고정시켜 치료하는데 만약 증상이 완화됐더라도 무릎 관절에 심한 압박이 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평상시 무릎을 구부리거나 쪼그려 앉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무릎을 펴고 앉는 습관을 들여야 하고 증상이 심할 시 수술치료가 필요하다.

발이 건강해야 몸이 건강하다.

▲ 발 건강을 위해 5센티미터 이하의 낮은 신발을 신는 것이 좋다 
우리의 발은 가장 아래에 위치해 때로는 관심의 영역에서 제외되지만 한 발이 20개의 근육과 26개의 뼈, 42개의 인대, 55개의 관절로 구성되는 정교한 부분이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우리 몸 전체를 지탱하기 어려워 걷기조차 힘겹다. 발을 다쳐본 사람이라면 발의 소중함을 잘 알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소중한 발을 지켜주는 신발은 어떤 것일까. 관절 건강을 지키려면 가급적 5센티미터 이하의 낮은 신발을 신는 것이 좋은데, 4~6센티미터 정도면 무난하다. 또한 신었을 때 발이 편하도록 발볼이 넓은 것을 신고 뾰족한 구두는 피해야 한다.

이때 쿠션감까지 있다면 관절에 압박을 덜 줘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만약 높은 굽의 킬 힐을 포기할 수 없다면, 첫째 날은 높은 굽을 신고 다음 날은 낮은 굽을 신어 격일로 패턴을 바꿔주는 것이 발과 무릎 건강에 좋다. 외출시 킬 힐을 신었더라도 사무실 같은 실내에서는 편한 신발로 갈아 신어 발을 쉬게 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신발을 살 때는 분명히 잘 맞았는데, 다음 날 신으니 불편하게 꽉 끼는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는 발이 하루에도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발을 고를 때는 발이 가장 커지는 저녁에 가는 것이 좋다. 또한 정장구두의 경우에는 자신의 발보다 1센티미터 정도 큰 것이 좋고, 운동화는 1~1.5센티미터 정도 큰 것을 골라야 한다.

우리의 발은 매일같이 체중을 지탱하며 수천 걸음에서 수만 걸음까지 걷는 고된 일을 감내한다. 음지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발을 위해 좀 더 편한 신발을 신어보는 것은 어떨까. 발을 위하는 것이 곧 건강을 위하는 길임을 명심하자. 데이트 중에 발이 아파 생기는 짜증도 확 날아갈 것이다.

이지연 기자 | ljypop@kofac.or.kr

저작권자 2010.07.21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