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경쟁력 1위 도서관이 놀이터다 핀란드 Finland
쓰기 연습은 학교 입학 전까지 하지 않는다. 학교에 다녀오면 가방 던져놓고 놀러 나가기 일쑤다. 사교육도 없고, 수업 시간도 OECD 국가 중 최저인 나라 핀란드. 다만 놀러 가듯 도서관만 드나들 뿐이다.
교육이라는 이름의 보트에 탄 아이들은 하나라도 물에 빠지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핀란드는 자일리톨로만 유명한 나라가 아니다.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에서 읽기, 수학, 과학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최상위에 랭크된다. 교육 강국이라 불리는 일본은 몇 년 전부터 ‘핀란드를 배우자’며 이 나라를 따라 하지 못해 안달이다. 핀란드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학력경쟁을 부추기지 않는 평등교육이다. 부모나 교사나 아이들을 야단치거나 공부하라고 강요하는 법도 없다. 하지만 이는 하향평준화 교육이 아닌, 어느 하나 떨어지는 학생 없이 모든 아이들을 일정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제도다. ‘교육이라는 이름의 보트에 탄 아이들은 하나라도 물에 빠지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말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학교에서는 잘 못하는 아이에게 강도 높은 개인별 지도를 한다. 책상 배치만 봐도 3~4명의 소수 그룹 교육이 가능하도록 4개의 책상을 붙여 개개인의 학습 수준에 맞는 교육을 실시한다.
정부가 ‘교육지상주의’를 지향한다 핀란드 교육 시스템에서 부러운 것은 수준 높은 교사와 그들이 지닌 자부심이다. 핀란드에서 교사는 고교생이 지망하는 직업 1, 2위를 다툴 만큼 선망의 대상이다.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석사 학위를 취득해야 하며, 지원자의 10%만이 교육계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즉, 능력이 뛰어나고 의욕이 앞선 사람을 뽑는다는 말이다. 평생교육의 마인드가 팽배한 사회 분위기 역시 핀란드가 풍기는 지적 향기의 배경이다. 마음만 먹으면 나이에 상관없이 다양한 루트로 공부할 수 있는 교육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대학까지 수업료는 무료이고, 고등학교까지 교재를 비롯해 연필 한 자루까지 수업에 필요한 모든 것이 지원된다. 핀란드에서 살다 온 정도상 박사는 “핀란드에서는 휴가가 긴 여름이면 대학에서 평생교육 클래스를 연다. 헬싱키대학은 외국어에서부터 미술과 음악 등 예술까지 1백 개가 넘는 강좌를 연다. 일반인이 참여할 수 있는데, 단 1명이 신청해도 강의가 열린다”라며 공부가 생활화한 핀란드의 분위기를 전한다.
매일 1시간씩 책을 읽는다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지만 의외로 집에서 사교육을 시키는 일은 없다. 대신 77%의 사람이 매일 1시간씩 독서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독서가 생활화한 사회로 독서를 통한 읽기는 아이들의 일상이다.
이메일, 인터넷 정보, 잡지도 독서의 대상이다 핀란드 아이들은 독서의 대상을 단순히 책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잡지를 비롯해 코믹 만화, 이메일, 인터넷 등 읽기 대상을 문자에서 정보매체로 폭을 넓힌 것. 책을 읽을 때도 전체를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짧은 문장을 읽고, 시・단편・소설 발췌문을 읽도록 한다. 이런 다양한 읽을거리를 통해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은 자신이 관심 있는 것에 읽기 습관을 들이고, 시험에 관계 없이 독서를 생활화하는 것이다.
학생이 신문을 보면 반액 할인해준다 핀란드 신문은 40면을 훌쩍 넘을 정도로 지면이 방대한데,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다. 학생이 신문을 구독할 경우 신문 가격을 반값으로 할인해주며 학교에서는 신문에 대한 관심을 키우기 위해 저널리스트를 학교에 초대해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마련한다. 학생신문을 발행하거나 신문사 견학 등으로 신문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노력한다.
핀란드 사람들의 집에는 책이 없다 1인당 보유 장서 수를 살펴보면 핀란드만큼 집에 책이 없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대신 도서관 이용률은 세계 제일로 한 사람당 1년에 21권의 책을 대출한다. 늘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서량이 적다는 비판을 가할 때 비교대상이 되는 일본도 1인당 공공도서관 대출 권수는 1년에 4.1권에 불과하다. 도서관 수 역시 많아 어린아이들이 충분히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도서관이 자리해 있으며 책 외에도 비디오테이프나 오디오테이프 등 다양한 교구가 마련되어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주 1회나 월 1회 정도 교사가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을 찾아 책을 빌리도록 한다. 때때로 도서관이 먼 동네에는 이동도서관 차가 온다. 핀란드 사람에게 도서관은 단지 책을 빌리거나 공부하는 장소가 아니다.
지역 도서관에서는 ‘책 힌트’라는 이름으로 신간 소개, 읽으면 좋은 책 리스트, 서평 등 다양한 내용을 담은 정보를 아이들을 비롯해 지역 주민에게 제공하며 책을 읽고 감상하는 독서 서클도 다양하게 운영한다. 또 하나 감탄할 만한 핀란드 도서관의 시스템은 바로 독서와 읽기 교육에 열성적인 도서관 사서다. 한때 아이들의 읽기능력 등 언어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자, 초등학교 교사와 도서관 사서가 나서서 국어교육 촉진 운동을 벌였을 정도다. 핀란드에서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도서관 사서가 일주일에 2회 정도 학교를 방문해 읽기교육을 비롯한 특별 수업을 진행한다. 읽기교육 방법을 개선하고, 아이들에게 더 열심히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한 노력이다. 몇 년 전에는 대학입시 자격시험에서 국어 과목의 성적이 현저하게 떨어지자 핀란드 교육 당국에서는 그 이듬해를 읽기 능력 향상의 해로 정하고, 전국에 더 많은 도서관을 설립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도 국어 시험을 본다 모국어에 대한 사랑과 존중 역시 핀란드 아이들의 읽기 능력을 향상시킨 비결이다. 초등학생들의 수업 시간표를 보면 핵심 과목이라 하여 배움의 기초가 되는 읽기와 쓰기, 셈하기를 열심히 가르치는데 그중에서도 언어 과목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것. 또한 제대로 진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읽기 보조 수업이 철저히 이뤄진다. 수업은 대부분 독서와 토론 중심이다. 역사 과목 시험은 달달 외워 적는 것이 아니라 아는 지식을 바탕으로 서술하는 식이다. 정도상 박사는 “언어가 모든 학문의 기본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시험에도 국어 시험이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다. 이들은 컴퓨터를 지식 기계라는 뜻의 핀란드 말인 ‘티에토코네 Tietokone’라고 말하는 식으로 외래어가 들어와도 핀란드어로 변형해 사용한다”며 이들의 모국어 존중을 강조했다.
Interview 핀란드의 한국 워킹맘이 들려주는 할머니의 할머니 때부터 내려오는 핀란드의 가정교육
10년 전 핀란드로 유학을 떠난 뒤 결혼하고, 직장에 다니며 핀란드 살이를 하고 있는 이지영 씨. 올해 만 여섯 살, 세 살 된 두 아들을 키우는 워킹맘이다. 큰아들은 프리스쿨에 다니고, 둘째는 같은 곳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다닌다. 이씨는 두 아이를 오전 6시 30분쯤 데려다주는데, 아이들은 이곳에서 아침을 먹고, 8시까지 자유시간을 보낸 뒤, 보드게임을 하거나 야외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핀란드 유치원에서는 알파벳을 가르치는 식의 교육 커리큘럼은 찾아볼 수 없어요. 유치원에 딸린 마당에서 뛰놀거나 인근에 자리한 실내 체육관을 찾아 전문 교사에게 체조 프로그램을 배워요. 날씨가 좋은 봄, 가을에는 숲 도깨비 체험이라 해서 자연을 관찰하는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죠.”
프리스쿨 교재는 셈이나 읽기, 쓰기를 가르치는 대신 두 개의 점을 연결한다든가, 선 긋기라든가, 같은 모양 연결하기 등 부담 없는 내용들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선행학습식 사교육은 찾아볼 수 없다. 핀란드 어린이들이 어릴 때부터 배우는 것은 스포츠나 미술, 음악 등 예술 활동이다. 네댓 살이면 지역 커뮤니티에서 축구를 비롯해 아이스하키, 아이스 스케이트 등 스포츠를 배우고, 피아노와 바이올린 등 악기 연주를 배운다.
하루 2시간 바깥바람을 쐬고 잠자기 전 책을 읽는다 “핀란드 사람들에겐 대대로 내려오는 교육 원칙이 있어요. 첫째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둘째는 하루 2시간 동안 바깥바람을 쐬기, 셋째는 많이 움직이기, 넷째는 자기 전 책 읽기예요.” 집에서는 엄마들이 아이를 끼고 앉아 글자를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을 자주 찾을 뿐이다. 책을 읽다 보면 아이들이 자주 보는 글자를 따라 발음하게 되고, 몇 가지 짚어주면서 발음해주는 것이 전부다. 다만 늘 책을 읽어주다 보니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글자에 익숙하다. “핀란드어가 문법은 어렵지만 ‘아·에·이·오·우’ 등 소리 나는 대로 알파벳을 쓸 수 있어 읽는 법을 쉽게 깨치거든요. 덕분에 40~50% 아이들이 스스로 읽기를 터득합니다.”
<우리 집 안방에서 따라 하는 핀란드 읽기 교육>
1 당장 어린이용 신문을 구독한다 아이가 소화할 수 있는 짧고 쉬운 내용의 기사를 하루에 하나씩 읽는 습관을 들인다. 성인용 신문이 부담스럽다면 ‘소년○○’ 등 어린이용 신문을 활용해보자. 읽기 능력은 물론 사고력과 세상사에 대한 관심을 키울 수 있다. 2 저녁 식사 후 독서 타임을 즐긴다. 온 가족이 모여 책을 읽자. 아이가 어리면 그림책을 보여주되, 평소 엄마 아빠가 독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책을 읽은 후에는 “뭐가 재미있었어?” “어떤 생각이 들어?” 등 아이의 감상을 물어보자. 독서노트를 마련해 읽은 책 제목과 감상을 한 줄씩 써 넣으면 표현력과 쓰기 능력도 키울 수 있다. 3 세종대왕의 뜻을 기린다 전문가들이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국어는 모든 학습의 기본이다. 우리말을 잘해야 영어도 잘한다.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에게 외국어부터 가르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제대로 한글을 읽고 쓰고,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교육이 먼저임을 잊지 말자. 4 도서관 사서와 친해진다 우리나라에도 어린이 도서관을 비롯해 시립·구립 도서관이 변신을 꾀하고 있다. 책 외에도 잡지, DVD 등을 감상할 수 있으며 영화 상영 등 다양한 문화행사와 동화구연, 독서교실 등 문화강좌를 여는 곳들이 많다. 아이들을 위한 독서모임을 꾸려 읽기 교육을 시키는 곳도 있다.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힐지 고민이라면 사서를 찾아가 이것저것 물어보며 정보를 얻자. 5 이메일로 독서를 시킨다 읽는 대상이 꼭 책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책만 보면 머리가 아픈 아이라면 아이에게 독서를 강요하는 것은 부작용만 가져온다. 손수 편지를 쓰거나 이메일을 보내 읽게 하는 것은 어떨까. 이때 짧은 동시를 첨부하거나 동화책의 한 부분을 인용해 적어본다. 만화책 역시 교육 효과가 높은 책들이 쏟아지고 있으니 참고할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