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의 순간들 스크랩
아스피린의 진화는 끝이 없는 것 같다. 진통과 해열에서 시작된 아스피린은 소염치료제로 발전했다. 다시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등 심혈관 질환을 사전에 예방하는 의약품으로 계속 진화해 왔다. 이제 가정 상비약으로, 또한 여행시에 챙겨야 하는 필수품으로 자리를 틀었다.
계속 진화하는 아스피린
진화는 여기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최근 암 위험을 크게 낮춰 하루 한 알씩 복용하면 암 발생과 사망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진통해열에서 심장과 암에 탁월한 효과가 있을 정도라면 ‘경이로운 약품(wonder drug)’으로 21세기의 만병통치약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영국 퀸메리 대학 연구팀은 아스피린의 효능에 관한 각종 연구와 임상 실험을 종합 분석한 결과, 아스피린을 10년 가량 장기 복용할 경우 암 발생률은 최대 35%, 사망률은 최대 50%까지 낮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 결과로 볼 때 50∼65세 연령대의 경우 75∼100mg 용량의 아스피린을 최소 5년에서 10년 간 복용할 필요가 있다. 아스피린 복용 기간이 3년 미만일 때는 암 예방 효과가 전혀 없으며 최소 5년이 지나야 암 위험성이 낮아진다.
특히 아스피린을 하루 한 알씩 10년간 복용한 사람은 대장암 발생률이 약 35%, 사망률이 40% 각각 감소했다. 또 식도암과 위암 발생률은 30% 낮아지고 사망 위험도 35∼50% 떨어졌다. 그러나 흡연, 과음, 과체중 등과 연관된 생활습관을 개선하면서 장기 복용할 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연구결과다.
자료에 따르면 1897년 독일의 제약회사 바이엘이 버드나무 껍질에서 처음 합성된 아스피린은 일반의약품으로 해마다 전세계에서 1000억 알이 소비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물론 부작용도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필수 의약품이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대 근동지방과 아메리카 인디언들도 버드나무 껍질 사용
아스피린의 역사는 아주 길다. 기록으로 볼 때만 하더라도 반만년이 넘는다. 인류 문명의 탄생과 함께 사용돼 온 의약품으로 장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아마 아스피린보다 역사가 더 긴 약품이 있다면 술, 바로 맥주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수천 년 전부터 사람들은 버드나무 잎과 껍질이 진통과 해열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4000년 전 고대 메소포타미아 왕국 수메르(또는 수메리아)의 유물인 니푸르 점토판에 기록된 한 처방전에는 설형문자로 버드나무가 새겨져 있다.
기원전 1500년경 고대 이집트 의학서파피루스 에버스(Papyrus Ebers)에도 버드나무 껍질을 달인 물로 통증과 열을 치료했다는 기록이 있다. 뿐만이 아니다. ‘의학의 아버지’로 칭송 받는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도 버드나무 잎으로 만든 차를 처방했다고 한다. 또 근동지역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인디언들도 이 처방을 썼다고 한다.
버드나무 껍질의 어떤 성분이 이런 효능을 내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약효가 있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알려지면서 버드나무 껍질은 두통과 해열을 치료하는 민간요법으로 널리 사용돼 왔다.
어떤 성분인지에 대해 밝혀진 것은 1830년대의 일이다. 진통과 해열의 효과가 버드나무 껍질에 들어있는 ‘살리신’이라는 물질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버드나무 껍질에서 진통효과를 내는 살리실산(salicylic acid)을 정제할 수 있게 된 후부터는 분말 형태로 사용됐다.
정식 화학명은 살리실산을 가공한 것으로 아세틸살리실산(ASA acetylsalicylic acid)이다. 그러나 살리실 산은 맛이 고약한데다 귀가 울리는 이명, 구토 등 부작용이 심해 복용에 문제가 많았다. 특히 심각한 위장장애를 일으켰다.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자극한 ‘경이로운 의약품’
19세기 말 독일의 유명한 제약회사 바이엘에 펠릭스 호프만(Felix Hoffmann 1868~1946)이라는 화학자가 근무하고 있었다. 명문 뮌헨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관절염 치료에 일반적으로 쓰이는 부작용이 많은 살리실산나트륨(sodium salicylate)을 대신할 수 있는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관절염을 치료하기 위해 6~8그램 정도의 많은 양의 살리실산 나트륨을 사용했다. 이로 인해 환자의 위장은 말이 아니었다. 위벽을 자극하여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렇다 할 대안은 개발되지 못한 상태였다.
역사상 위대한 발견과 발명이 보여주듯이 혼자서 모든 것을 하는 독불장군은 없다. 버드나무 껍질에서 진통과 해열작용을 나타내는 유효성분 살리신은 이미 1828년에 프랑스의 화학자 르옹스에 의해 결정형태로 만들어졌다. 또한 1838년에 이탈리아 화학자 피리아는 성분을 산화시켜 살리실산(salicylic acid)을 얻었다.
1832년 프랑스의 화학자 샤를 프레데리크 제라르는 살리실산과 염화아세틸을 혼합하여 이러한 부작용을 없애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공정은 너무 긴 생산 시간을 필요로 했으며 결국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호프만이 오늘날의 아스피린을 발명하도록 자극을 준 것은 그의 부친이었다. 당시 류머티즘을 앓고 있던 그의 아버지는 관절염으로 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더구나 류머티즘의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살리실산을 먹느라 고생하는 모습은 차마 견딜 수가 없었다.
관절염으로 인한 고통과 살리실산으로 인한 복통, 그리고 때로 구역질을 하며 토사물을 배출해 내는 아버지의 고통을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는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진통과 해열은 지금과 같이 유지하되 위장장애를 일으키지 않는 합성의약품을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아버지의 신경통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약을 찾던 중 호프만은 제라르의 연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버지의 고통을 덜어드리겠다고 작심한 그는 아세틸살리실산에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날 아버지는 처음으로 편한 잠을 잤다”
1897년 10월 호프만은 결국 위장장애를 일으키는 살리실릭산을 아세틱산으로 아세틸화 하여 화학적으로 순수하고 안정된 상태의 ASA를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다시 말해서 살리실릭산과 아세틱산을 적절하게 섞어 복용하기에 좋은 합성의약품을 개발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연구가 성공을 거두던 그날 호프만은 조그만 약병을 아버지께 드렸다. 그날 밤 그의 아버지는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고통 없는 밤을 보낼 수 있었다. 편하게 잠든 아버지의 모습을 보던 호프만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이제 그는 비단 아버지뿐만 아니라 세계의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연구를 마무리를 할 준비작업에 들어야 했다. 그는 아버지의 아들만이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과학자로써 모든 사람을 위한 아들이 돼야만 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약리학자들은 처음에는 회의적인 눈으로 그 연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호프만이 만든 합성의약품의 효능이 현실적으로 나타나 점차 알려지고, 그 효능을 인정하는 연구들이 쏟아져 나왔다. ‘고통이 없으며 열을 내리고 통증을 완화시키는 물질’이 탄생하게 됐다.
호프만은 이 경이로운 약품의 이름을 아세트산(acetic acid)의 ‘a’와 버드나무의 학명(spiraea)을 합성해 ‘아스피린(aspirin)’이라고 지었다. 이는 최초의 합성 의약품으로 1899년부터 본격적으로 판매됐다. 처음에는 가루형태로 시판되다가 1915년부터 현재의 알약 형태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아스피린 발명특허를 둘러싼 논쟁도
아스피린 개발 특허를 둘러싼 논쟁도 한동안 지속됐다. 1949년 역시 바이엘의 연구원이었던 아서 아이첸그룬(Arthur Eichengrun) 박사는 한 논문을 통해 아스피린은 자신이 계획했고 총괄한 합성의약품이라며 발병특허는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유대인 출신인 그는 이 논문에서 자신이 아스피린의 최초의 임상실험 책임자였고, 호프만은 연구를 돕는 보조연구원으로 실험실 도우미에 불과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이첸그룬의 이러한 주장은 역사가들과 화학자들에게 무시당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바이엘 회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를 전면 부인했다. 아스피린을 발명한 학자는 호프만이라는 사실에 쐐기를 박았다.
이후 호프만은 바이엘사의 마케팅 부서로 자리를 옮겨 아스피린 전도사의 역할을 계속한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1946년 2월 아무런 유서도 남기지 않은 채 스위스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이름은 아스피린의 명성으로 완전히 가려진 듯싶다.
신약개발의 교과서로 통하는 아스피린
아스피린은 신약 개발의 교과서로 통한다. 1899년 판매를 시작한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인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진통제로 자리매김한 아스피린의 상업화 과정은 전형적인 신약 개발의 기법이다. 흥미로운 것은 아스피린의 부작용마저 교과서적인 사례라는 점이다.
아스피린은 특이하게도 효능을 인정받아 상용화가 먼저 되고, 작용기전은 상용화 된지 수십 년이 흐른 다음에야 밝혀지게 된 의약품이다. 영국의 약리학자 존 베인(John R. Vane)은 아스피린의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아스피린이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이라는 물질의 합성을 저해함으로써 그 효과를 낸다는 사실을 입증한 그는 1971년 이 업적으로 노벨상까지 수상했다.
아스피린의 타깃은 COX(CycolOXygenase)라는 효소다. 이 효소는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프로스타글란딘은 염증과 발열, 통증을 매개하는 물질로 아스피린이 COX에 붙어 프로스타글란딘을 생성하지 못하게 해 염증과 발열, 통증이 줄어들게 한다. 이 원리로 아스피린은 염증 반응을 줄여주는 소염제, 열을 내리는 해열제, 통증을 줄여주는 진통제가 됐다.
프로스타글란딘을 만드는 COX라는 효소는 한 종류가 아니라 COX1과 COX2로 두 종류인데, 각각의 역할이 다르다. COX1은 위장을 보호하는 점액 생산을 촉진하고 위산 분비를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 COX2는 혈액 응고를 돕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COX1, COX2가 억제되면서 위장장애와 출혈 성향 증가 현상이 발생한다. 즉,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부작용 가운데 ‘COX2 억제로 발생하는 항혈액응고 현상’은 심장병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아스피린이 COX2를 억제해 혈액 응고를 방해하고 혈전(혈관 속에서 피가 굳어진 덩어리) 생성을 방지함으로써 혈액이 혈관에 원활하게 흐르게 한다.
이 부작용은 심근경색을 겪었거나 심근경색의 위험이 있는 협심증 환자, 그리고 뇌경색증을 겪은 환자의 혈류를 개선하는 것으로 낮은 양의 아스피린을 꾸준히 복용할 경우 병환 재발의 가능성을 낮출 수 있었다.
예전부터 이미 써오던 약으로 안정성이 보장되면서도 생산이 용이한 아스피린은 부작용으로부터 다시 새로운 적응증을 찾아내 또 다른 병을 치료하는 사례를 남기며 신약개발의 지침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혈압 치료제로 등장한 비아그라가 발기부전제로 진화한 것도 같은 사례다.
아스피린은 여전히 미개척지인가?
물론 아스피린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아스피린을 복용한 사람들 중 평균 6% 정도가 위장 장애를 일으켰으며 영아에게 해열제로 처방했다가 라이 증후군(Reye syndrome, 어린이에게 발병하는 급성뇌염증)으로 발전해 심각한 위험 상태를 초래하기도 한다. 심한 천식 환자나 만성 두드러기 환자에게도 아스피린은 독이다.
하지만 아스피린은 여전한 미개척지다. 소염, 해열, 진통제의 역할로 쓰이다가 항혈소판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뇌졸중, 심근경색 예방약으로 탈바꿈하면서 진화를 계속해 왔다.
아스피린 탄생 100주년이었던 1999년 중국과 스페인 등지에서는 아스피린을 심뇌혈관질환 2차 예방을 위한 약품으로 승인했고 2008년에는 총 38개 국가에서 협심증, 심근경색 등의 심혈관 질환 예방과 뇌졸중 병력 환자의 재발방지 약으로 승인했다.
지난해 호주국영 ABC방송은 호주 남부 태즈메니아대학(UTAS) 부설 멘지스연구소에서 70세 이상 호주민 1만 5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실험 결과, 아스피린이 치매와 암 예방에도 효과적일 수 있다고 전했다.
해열진통제에서 출발한 아스피린이 이제 뇌졸중과 심근경색 치료제로 부상했고, 다시 치매와 암까지 예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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