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광일 부국장 겸 국제부장
대통령은 국군을 통수(統帥)한다(헌법 제74조). 국군에 관한 모든 것을 다 거느리고 지휘한다는 뜻이다. 그는 그 책임을 짊어진 총사령관이다. 그런데 23일 오후 2시 34분 대한민국 영토 연평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국민에게 직접 보고가 없다. "교전규칙 보완하라, 서해 5도 군 증강하라, 해병대 감축 백지화하라, 민간단체 대북지원 규제하라" 등등 총사령관은 부하에게 지시만 하고 있지 대국민 보고가 없다. 지시의 말들은 장차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미래형이다.
우리는 국군 통수의 권한과 책임을 위임받은 총사령관에게서 과거형 동사로 된 보고를 듣고 싶다. "추가 도발, 좌시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추가 도발을 좌시하지 않고 적의 해안포를 궤멸시켰습니다" 하고 보고해달라. "다시는 도발을 생각지 못할 정도로 2~3배 응징을 하라"는 명령은 부하에게 비공개로 하라. 그러고 나서 "다시는 도발을 생각 못할 만큼 막대한 응징을 가했습니다" 같은 대국민 보고를 해달라.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폭격기로 때리면 안 되는가?"라고 국방장관에게 묻지 말라. 최종 결단은 총사령관의 몫이다.
1·21사태, 아웅산테러, KAL기 폭파까지 언급할 필요도 없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에 이은 11월 연평도 민간 마을 포격은 명명백백한 '추가' 도발이다.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이제 와서 추가 도발 좌시 않겠다고 말하지 말라. 공허하다. 우리 국민은 60년대부터 "북괴는 오판 말라"는 구호에 맞춰 공설운동장에서 목청을 돋우었던 숱한 궐기대회의 추억을 갖고 있다. "규탄"도 참 많이 했다.
지구촌에서 가장 질 나쁜 '갈취 국가'(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25일자)는 이제 3대 세습 세자책봉을 끝내놓고 그에게 '거친 게임'(AP통신)을 연습시키고 있다. '추가 도발'이 아니라 '연속 도발'이 현재 진행 중이다. G20 정상회의와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고춧가루를 뿌렸다. '핵폭탄'과 '불가측성'이란 2장의 폭력적 카드를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AP·파이낸셜타임스).
우리 총사령관은 천안함 폭침 후에 말했다. "어떠한 도발도 용납하지 않고, 적극적 억제 원칙을 견지할 것이다." 옳은 얘기다. 이때 '적극적 억제 원칙'은 타이밍이 생명이다. 치킨 게임에 능숙한 국제 깡패들은 느닷없는 주먹 날리기(불가측성)가 주특기다. 다시는 그런 짓 못하게 버릇을 고치려면(억제하려면), 망동을 저지른 그 즉시 혼쭐을 내주어야 한다. 천안함 때도 연평도 때도 총사령관은 '적극적 억제 원칙'을 준수하지 못했다.
말이 많으면 매섭지 못하다. 이제라도 총사령관은 연평도의 모래사장을 다 뒤져서라도 숨진 병사의 잃어버린 다리를 찾아서 돌아오라. 청와대 뒷산에서 광화문 촛불집회를 보고 흘렸던 눈물이 아직 남아 있다면 숨진 병사의 다리를 그 눈물로 씻어서 들고 오시라. 연평도·백령도로 아들을 군대 보낸 인사가 국무위원과 군 수뇌부에 여럿 있기를 바란다. 아니 그런 과한 욕심 말고, 사태 발생 60시간이 지나도록 쑥밭이 된 민간 마을에 군 최고지휘부 중 누가 현장에 갔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국방장관 사표를 받은 오늘 밤 총사령관은 헌법 제66조~제85조를 다시 정독하시라. '국토의 보전', '국가의 보위', '국민의 자유와 복리'에 대해, 그리고 "국가의 안위에 관계되는 중대한 교전상태(交戰狀態)에 있어서 국가를 보위하기 위하여"(제76조) 대통령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국민에게 보고해야 하는지 스스로 묻고 기도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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