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배 한 번 안 아픈 사람은 없다. 배가 아프면 당연히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그 원인을 파악한 후 정확한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배가 조금만 아파도 매번 병원을 찾기란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복통(腹痛)에 대한 상식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복부(배 부위) 통증의 위치를 알면 30가지 이상의 질병을 알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배가 건강한 사람은 몸 전체가 건강한 사람이다.
복통은 위장, 간장, 췌장, 담낭 등과 같은 소화기 염증을 비롯해 천공, 괴사, 혈액순환 장애(허혈)로 일어나기 때문에 통증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으면 어느 정도 병명(病名)을 알 수 있다. 또 복통은 협심증, 심근경색과 같은 허혈성 심장병이나 요로결석, 생리통, 자궁외 임신 등으로 올 수 있어 전조 증상을 알면 중병을 피할 수 있다.
◆ 배가 아플 때 자가진단 어떻게
=배를 좌우, 상하로 4등분해 위치별로 나타나는 통증으로 어떤 장기에서 이상이 발생했는가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상복부에서 통증이 생기면 위장 혹은 십이지장의 궤양과 췌장염이 원인일 수 있다. 하복부에서는 방광이나 전립선의 감염증과 나팔관, 난소와 자궁의 감염증, 종양에 의해서 통증이 생긴다.
오른쪽 아랫 부분(우하복부)에서 생기는 통증 중 매우 심각한 것은 충수돌기염(흔히 맹장염)이다. 이 부위의 통증을 유발하는 또 다른 원인은 신장결석, 대장염 그리고 여성은 나팔관과 난소질환 등이다. 충수돌기는 회맹부라고 불리는 대장 말단에 붙어 있는데 이곳은 림프절이 잘 발달해 질환이 침범하기 쉽다. 림프종, 장결핵, 장티푸스, 장염 등이 여기에서 잘 시작된다. 2세 이전 남아에서 잘 나타나는 장중첩증도 이곳에서 시작된다.
복부의 오른쪽 윗부분(우상복부)에서 발생하는 통증은 담낭(쓸개)에 염증을 유발하는 담석증 때문이다. 또한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간의 염증성 질환인 간염도 이 부위에 통증을 유발한다.
왼쪽 윗부분(좌상복부)에는 위장의 대부분과 대장의 일부, 비장이 위치해 있는데 이 부위에 지속적인 통증을 일으키는 것은 위궤양이다. 대장에 가스가 차 있을 때에도 통증이 생길 수 있지만 대부분 금방 사라진다. 복부에 강한 충격으로 비장이 손상을 입었거나 비장을 침범하는 여러 질환에 의해서도 이 부분에 통증이 생길 수 있다.
특별한 장기가 없는 왼쪽 아랫부분(좌하복부)의 통증은 게실염과 신장결석으로 생긴다. 통증이 있어도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심하게 아프면 요로결석일 가능성이 높다. 게실염은 대장(하행결장)의 벽에 생긴 주머니에 장의 내용물이 고여 발생하는 염증이다. 여성은 좌하복부가 아프다면 나팔관과 난소에 감염증이 생겨 통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배가 아플 때 아픈 부위를 눌러 통증이 더 심해지는 경우 복통의 원인이 심각한 것일 수 있다. 따라서 누를 때 더 아픈 압통(押痛)이 있는가를 확인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압통은 손가락으로 복부의 특정 부위를 눌렀을 때 그 압력에 의해 통증이 더 심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대수롭지 않은 원인에 의한 복통은 대개 압통을 동반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장 및 요료결석은 매우 심각한 질환이지만 압통이 전혀 없거나 아주 약하게 동반된다.
◆ 질환이 보내는 통증 신호와 증상
=소화불량은 심각한 질환은 아니지만 가끔은 심근경색의 증상일 수 있다. 운동 또는 격렬한 활동 후에 발생한 소화불량, 어지럼증과 동반된 소화불량, 식은땀을 흘리며 소화가 잘 안 될 때, 소화제로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는 소화불량 등이 나타나면 심장마비와 관계가 있는 만큼 응급조치가 필요하다.
오랫동안 가슴통증과 트림이 있었고 제산제나 위궤양 치료제를 사용해도 차도가 없다면 궤양, 위출혈, 식도의 협착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 위나 십이지장에 궤양을 앓았던 적이 있는 사람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심한 복통을 호소하면 궤양이 악화돼 결국 위나 십이지장의 벽이 완전히 구멍난 천공성 궤양에 의한 증상일 수 있다.
명치 끝부분 또는 왼쪽 윗배에 다소 심한 통증이 생겨 등으로 뻗치고 때로는 구토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 췌장염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췌장염이 심하면 당뇨병을 유발하기도 하며 때로는 소화효소가 유출돼 복강 내부 내출혈의 원인이 된다. 술과 기름진 음식 섭취량이 많아지면 췌장염을 일으키거나 더욱 악화된다.
상복부 중앙(명치 끝부분)의 복통과 피를 토하는 증상, 때로는 자장면 색과 비슷한 흑색 변을 보는 증상이 생기면 헬리코박터 균의 감염에 따른 위궤양 또는 십이지장궤양이 원인인 경우가 흔하다. 음주는 궤양에 걸릴 확률을 더 높이고 췌장염을 악화시켜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한다.
■ 배 따뜻하게 해야 질병에 강해져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먹은 후에 오른쪽 윗배가 아프고 속이 메스꺼워 토할 것 같거나 실제 구토를 했다면, 쓸개즙이 모여 있는 담낭에 돌이 있을 가능성(담석)이 있다. 중년의 나이에 갑자기 좌하복부 통증이 있고 설사와 변비가 반복된다면 게실염을 의심해야 한다. 게실염을 치료하지 않으면 대장이 파열돼 응급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여성의 경우 성교 시 배가 아프다면 생식기에 클라미디아 또는 임질균의 감염을 의심해야 한다. 이런 세균에 감염됐을 경우 나팔관을 손상시켜 불임이 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복부 팽만감, 복부 불쾌감, 복통이 있고 예전에 비해 적은 양의 음식만으로도 포만감이 금방 생기면 간혹 난소암을 비롯해 몇몇 치명적인 악성 질환의 초기 증상일 수 있다.
오른쪽 아랫배가 아프고 눌렀을 때 통증이 심해지는 압통 증상이 있다면 맹장염의 가능성이 있다. 맹장염은 그 자체로 심한 질병이 아니지만 염증이 심해 맹장이 터지면 매우 치명적일 수 있다.
배 전체가 따뜻한 사람은 몸 전체가 따뜻하고 건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배 전체가 차가운 사람은 몸 전체가 차가워 '냉한 체질'이나 '체온저하'가 있다는 뜻이다.
일본 명의로 손꼽히는 이시하라 유미 박사는 "정상 체온(36.5도)보다 체온이 1도 내려가면 면역력이 30% 이상 떨어지고 신진대사도 약 12%쯤 하락한다"며 "배가 차가운 사람은 신진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여서 어떤 병에도 잘 걸린다"고 설명했다.
배꼽 아래가 차가운 증상은 대부분 여성에게서 나타나며 하반신 전체가 냉할 때 발생한다. 하반신이 냉하면 하반신에 있어야 할 마땅한 혈액과 열, 기가 하반신에 있을 수 없게 돼 몸 위쪽을 향해 밀려 올라온다. 이 때문에 심장이 위쪽으로 밀려 올라간 느낌으로 두근두근하거나 숨이 차고 목에 무언가가 막힌 느낌이 난다. 얼굴이 붉어지고 발진이 나며 안절부절못한다. 불안, 초조, 불면이 생기는 것과 같은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또 상반신으로 피가 몰리기 때문에 팔로 측정하는 혈압이 올라간다.
명치 부위가 차가운 사람은 위의 혈액순환이 좋지 않은 것으로 이런 증상을 방치할 경우 위염, 위궤양, 위암과 같은 질환에 걸리기 쉽다. 오른쪽 옆구리의 명치 부위가 차가운 사람은 간장병을 앓을 가능성이 있거나 이를 방치하면 간장병에 걸릴 수 있다. 또 여성들은 하복부가 차가울 경우 아랫배에 있는 자궁, 난소, 방광, 신장, 대장 하부, 직장의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함을 의미하며 자궁근종, 자궁암, 생리불순, 생리통, 난소낭종, 난소암, 방광염, 신장염이나 요로의 염증 및 결석, 암, 대장암에 걸리기 쉽다.
※참고= 건강신호등(닐 슐만ㆍ잭 버지ㆍ준안 지음ㆍ비타북스 발간), 복통 따라잡기(비에비스 나무병원 민영일 병원장 지음ㆍ대한의학서적 발간), 전조증상만 알아도 병을 고칠 수 있다(이시하라 유미 지음ㆍ전나무숲 발간)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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