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 Gauguin
Les Alyscamps, Arles 1888 Oil on canvas, 35 7/8 x 28 3/8 in. (91 x 72 cm) Musee d"Orsay, Paris Be Mysterious 1890 Lime wood and polychrome 73 x 95 x 0.5 cm (29 x 37 1/2 x 1/16 in) Musee d"Orsay, Paris 그리고 한 여자를 사랑에 미쳐 자살하게 만든다. 그런 다음 다시 타이티로 가 사는데, 거기서도 한 원주민 소녀를 만나 동거하다가 문둥병을 얻어 사망하는 것이다. Spirit of the Dead Watching 1892 Oil on burlap mounted on canvas,28 1/2 x 36 3/8 in. (72.4x 92.4 cm) Albright-Knox Art Gallery, Buffalo, NY 고갱이 타히티에서 그린 최대 명작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고갱이 타히티에 도학한 후 성취한 모든 이론과 실제를 보여주는 현란한 이력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그림의 소재는 고객의 체험에 의한 것이다. 어느 날 여행에서 돌아와 새벽에 방문을 열었을 때 본 광경을 그림으로 구상화한 것이다. " 테후라는 침대에 배를 깔고 나체로 누워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공포에 질려 눈을 부릅뜨고 있었지만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한동안 나도 불안했었다.테후라의 공포가 나한테도 전해진 것이다. 그녀의 눈은 유황빛을 내쏟듯 빛나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그녀를 나는 처음 보았다. 어둠속에서 위험한 유령과 불타는 욕망에 접해있던 이 소녀가 혹시나 두려워할까봐 나는 움직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그 순간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 했는지를 알고 싶었다. 아마도 곤혹스러운 얼굴로 보아 나를 귀신이나 그녀의 동족들을 잠못이루게 괴롭히는 투파커응,해골쯤으로 알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Faaturuma 1891,Oil on canvas 94.6 x 68.6 cm (36 7/8 x 26 3/4 in) The Nelson-Atkins Museum of Art, Kansas City 고갱의 그림에는 광기(狂氣)로 가득찬 '원시적 열정'에의 갈구가 묻어나오고 있다. Matamoe 1892,Oil on fine canvas 115 x 86 cm (45 1/4 x 33 7/8 in) Pushkin State Museum of Fine Arts, Moscow 화필의 둔중함과 원색의 혼합에서 우리는 강력한 '원시주의(primitivism)'를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꿈틀거리는 붓 터치에서 하나의 즉흥곡을 듣는 것이다. 망고 꽃은 든 타이티 여인들 ( 빨간 꽃과 유방,Two Tahitian Women with Mango)]- 고갱(Paul Gauguin), -73*94cm
이 작품은 고갱의 타히티 작품 중 가장 자연스러운 것 중의 하나이다. 대부분의 작품이 의식적인 그의 원시주의적(原始主義的) 조형 의지를 담고 있다면, 이 작품은 그런 의식을 떠나서 간결한 구도로 인공적(人工的)인
단순화(單純化)나 양식화(樣式化)의 흔적도 없이, 두 여인의 포즈에도 고갱이 가끔 쓰는 자바나 이집트의 그 양식도 볼 수가 없다.
젊고, 그래서 아름다운 매력을 몸 속에 가득히 지니고 자연스럽게 서 있다. 그것은 유럽인이 꿈꾸어 오던 이브(Eve)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반대적 이브도 아니다. 그런 대립을 뛰어넘은, 싱싱한 한 현실로서의 여체(女體)인 것이다. 나는 '야한 것'은 'Primtivism'과 통한다고 생각한다. 즉 '원시적 야성(野性)'에의 향수가 현대미학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Three Tahitians-고갱(Paul Gauguin)-93*73cm,1898년. 세 명의 타히티인은 V자 형태의 안정된 구도 속에, 고대 문명의 장식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인위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갱의 장식주의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배경도 장식적인 기능을 살려 평면 처리했다. 이와 같은 배경 처리는 당시 고갱이 즐겨 쓰던 기법이다. '보디 피어싱(body piercing)' 이 그렇고 보디 페인팅이 그렇다. 고갱은 그것을 일찍부터 간파하고 있었던 셈이다. 현대인들은 문명이 발달할수록 오히려 원시시절을 그리워 한다. 고갱도 그랬던 것이 이닐까? There is the Marae 1892 Oil on canvas,26 3/4 x 35 3/4 in. (68 x 91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그가 화려한 도시를 버리고 외딴 섬 오지로 떠난 것은 그런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Les Miserables,1888 Oil on canvas Rijksmuseum Vincent van Gogh, Amsterdam 고갱의 그림은 고흐의 그림과 무척 닮아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서로 싸우다 갈라서, 고흐는 홧김에 자기의 귀를 짤라버리기까지 했다. 정열과 정열의 마주침은 싸움과 결별로 귀결되고 만것이다. 나는 고갱의 그림에서 '둔중한 관능미'를 본다. 백마 (The White Horse)]-고갱(Paul Gauguin)-91.5*140cm 그리고 '야한 여자'의 이미지를 읽는다. <광마> 마 광 수 예술가의 어머니(The Artist's Mother)--33*41cm,1890년. 고갱은 어머니가 젊었을 때 찍은 사진을 토대로 이 초상화를 그렸다. 어머니가 페루 출신이었듯이 이국미를 강조했다. 고갱의 어머니는 페루 도기를 수집했는데, 이는 고갱에게 두고두고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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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jiin2518.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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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너와집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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