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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66 2009. 8. 5. 09:10

현대미술의 기원

이것이 미술인지 아닌지 회의를 가져다주는 행위조차 미술로 포함

 

커다란 개념을 동시대의 것으로 좁게 한정하려 했지만, 동시대의 미술 또한 그 범위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다. 동시대 미술을 크게 아우르는 특성들을 말하는 것도 쉽지 않다. 여러 가지 특성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는 미술의 개념 아래 내포되는 미술형식이 매우 다양화되었다는 것이다. 회화와 조각 정도가 미술이라고 여겨졌던 지난 시대에 비해 현대미술은 작품을 보는 이에게 이것이 미술인지 아닌지에 대한 회의를 가져다주는 행위조차 미술로 포함하게 되었다.

 

예컨대, 수술대 위에 누워 의사들에게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입히고 성형수술을 감행하는 장면을 세계로 전송하는 행위를 우리는 ‘미술’이라는 범위에 포함시킨다. 아름다움을 위한 성형수술이라는 현대의 병리적 현상에 대한 비판의 언어로서 오를랑(Orlan)이라는 작가는 자신의 얼굴을 매체로 삼아 생명을 건 미술 행위를 하고 있다. 이것이 현대미술이다. 청동주물을 뜨거나 돌을 깎아 조각을 하는 대신 폐차시키는 자동차들을 납작하게 압축하고 이어 붙여 알록달록하고 거대한 조형물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도 현대미술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캔버스를 짜고 유화안료에 기름을 개어 붓과 나이프로 그림을 그리는 미술가들이 있다. 이것도 현대미술이다. 이런 일들이 어떤 경위로 가능하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 현대미술의 기원을 밝히는 일이 될 것이다.


 

 

현대미술의 시작 - 인상주의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양식으로는 인상주의(Impressionism)가 꼽힌다. 사물이 아니라 단지 인상을 그릴 뿐이라는 비난이 그 양식의 명칭이 되어 버린 인상주의는, 정확히 말하자면 그냥 인상이 아니라 햇살이 내리쬐어 변화되는 인상을 그리고자 하였다. 야외에 이동식 이젤을 들고 나가 풍경을 그리는 모습이 일반적인 화가의 모습으로 알려져 있는 현대인에게는 햇살의 변화에 따른 풍경의 인상을 그린다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지겠으나, 이는 인상주의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에 대한 반증이다.

 

말하자면 인상주의는 전시대까지의 당연했던 관행인, 어두운 화실에서 완성되는 그림에 대한 반격이었던 것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가만히 있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는 햇볕을 좇아서 혼색이 아닌 원색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물감이 혼합되면 채도가 떨어져 햇살 아래 명멸하는 사물들의 생생함을 담아내지 못하는 것을 막기 위한 시도였다. 그 결과 인상주의 그림들은 혼돈스러운 원색들이 난무하는, 막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형태가 불분명한,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그 무엇으로, 기존의 그림에 익숙해져 있었던 관객에게는 충분히 불쾌감을 선사할만한 것이었다.

  

 

무엇이 되었건 익숙했던 것을 바꾸어 불쾌감을 선사한다는 것은 현대미술의 크나큰 특징들 가운데 하나이고, 이런 양상은 일면 인상주의에서 비롯된 바가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인상주의 그림들이 대중의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등은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쉽게 입에 올릴 수 있는 화가가 되었으며, 이들의 전시는 전 세계를 돌며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인상주의는 기존의 어떤 부분을 정확히 반대하고, 그 반대의 에너지를 통해 새로운 것을 구축하는 방식을 현대미술의 새로운 전통으로 굳혔다.

 

 

표현주의를 만들어낸 파토스의 예술 – 빈센트 반 고흐

 

한편 인상주의를 동경하며 인상주의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요절한 천재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피카소와 함께 현대미술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화가이다. 반 고흐는 살아생전 그림을 한 점도 팔아보지 못했고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던 불행한 이었고, 흠모했던 고갱과의 불화나 나이든 창녀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자신의 귀를 잘랐던 사건 등이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관객들은 그의 그림 속에서 격정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내면을 보고자 한다. 예술적 천재와 광기가 서로 상관있다고 여겨지기 시작했던 것은 낭만주의적 전통에서 부터였다. 반 고흐는 그러한 낭만주의적 예술가관을 계승하면서도, 예술작품이 예술가 개인의 내면을 드러내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는 현대적 예술 개념을 공고히 하는 인물이기도 한 것이다. 마치 종교화가 종교의 교리를 전달하듯이 반 고흐의 그림은 결과적으로 그의 내면에 존재하는 어떤 것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기능하는 것이다. 반 고흐는 예술가의 파토스(pathos)가 예술의 동인이 되는 현대 표현주의의 생성에 북구의 화가 뭉크와 함께 불을 붙이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입체주의와 추상미술의 선구자 - 폴 세잔느


반 고흐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세잔느(Paul Cezanne)는 현대미술에 정반대의 전통을 세웠다. 세잔느의 그림은 인상주의의 그것과 같이 단속적인 붓터치로 이루어져 있지만 인상주의 작품들이 빠르고 거친 붓질들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세잔느의 붓질은 고뇌에 가득차 있다. 그는 명멸하는 빛 속에 놓여있는 세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인상주의자들과는 감성적으로 정반대에 서 있는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의 관심은 튼튼한 화면의 구축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보여지는 대상 이면의 질서를 화면 속에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반짝반짝하는 활달한 붓질들로 이루어진 인상주의자들의 화면이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을 준다면, 세잔느의 화면은 차갑고 단단해 보인다. 동시대의 반 고흐가 뜨거운 감성을 화면에 담아냈던 것과도 전혀 다르게, 세잔느는 화면 안에서 화면 내적인 질서를 구현하고자 했다.

 

 

 

그렇다고 해서 세잔느의 그림이 대상을 무시하고 화면 내적인 질서 만을 추구한 그림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는 않다. 그에게 있어 화면의 구축은 그 대상이 되는 세계의 질서를 발견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세상을 원뿔과 구와 정육면체로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로 자신의 시각을 드러냈는데, 이 세잔느의 교지는 이후 피카소 등이 추상미술로 나아가는 한 발자국을 내딛을 수 있도록 독려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실제로 세잔느의 그림이 원뿔과 구와 정육면체로 이루어진 것은 전혀 아니다. 세잔느는 그저 보이는 것 이면에 있는 원리의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을 전하고자 한 것으로 보이지만, 후대에 그것은 추상미술의 근거가 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피카소와 브라크의 분석적 입체주의 시기에는, 마치 세잔느의 말을 실천이라도 하듯, 원뿔과 구와 정육면체의 깨어진 조각들이 화면에 흩뿌려져서 대상을 구성하는 작품들이 나타났다. 사물 이면의 질서에 대한 관심은 대상을 추상화하는 방향으로 후대를 이끌었고, 세잔느는 그가 원했던 그렇지 않건 현대 추상미술의 선구자라 부를 만한 화가가 되었다.

 

 

현대미술의 기폭제 - 뒤샹의 레디메이드

 

다른 한편, 누구도 알지 못했던 방향으로 현대미술을 이끌어간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과 같은 이가 있었다. 그는 소소하고 개인적인 장난처럼 보이는 해프닝을 벌임으로써 인류의 역사에 남을만한 미술의 전환을 이끌어냈다. 그는 공산품으로 만들어진 남성용 소변기를 하나 선택하여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R. Mutt’)으로 서명을 하고 연도(1917년)를 기입한 후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을 붙여 그것을 자신이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있는 공모전에 출품한다. 공모전의 결과야 말할 것도 없이 탈락이었고 그 작품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던 사진 기록으로만 남아 있다. 한번의 해프닝으로 끝난 일이었지만, 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전시장에 내놓은 이 사건은 현대미술에 걷잡을 수 없는 공명을 일으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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