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그늘에 고요히 마음 베인다. - 이기철
햇빛과 그늘 사이로 오늘 하루도 지나왔다.
일찍 저무는 날일수록 산그늘에 마음 베인다.
손 헤도 별은 내려오지 않고
언덕을 넘어가지 못하는 나무들만 내 곁에 서 있다.
가꾼 삶이 진흙이 되기에는
저녁놀이 너무 아름답다.
매만져 고통이 반짝이는 날은
손수건만한 꿈을 헹구어 햇빛에 널고
덕석 편 자리만큼 희망도 펴놓는다.
바람 부는 날은 내 하루도 숨 가빠
꿈 혼자 나부끼는 이 쓸쓸함
풀뿌리가 다칠까봐 흙도
골라 딛는
이 고요함
어느 날 내 눈물 따뜻해지는 날 오면
나는 내 일생 써온 말씨로 편지를 쓰고
이름 부르면
어디든 그 자리에 서서
나를 기다릴 사람 만나러 가리라
써도써도 미진한 시처럼
가도가도 닿지 못한 햇볕 같은 그리움
풀잎만이 꿈의 빛깔임을
깨닫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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