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끝에 초희(楚姬)가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난설헌(蘭雪軒)이라고 부른 여자, 허난설헌(1563-1589)입니다. 세상 남정네들로부터 받은 질시와 투기, 두 아이를 일찍 잃은 한을 품고 산 여자입니다. 스물일곱 해 만에 홀연히 하늘로 떠난 여자입니다. 먹먹한 대한민국에서 먹먹한 가슴을 안고 무작정 떠난 길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허난설헌 생가터 솔숲 사이로 한 여자가 걸어갑니다. 늘 푸른 송림과 노란 나들이옷 대비가 왜 그리 강렬하던지요.
400년 전 먹먹한 삶을 살다 간 여자, 난설헌을 강릉에서 만났습니다.
시대를 잘못 만난 천재 문장가
난설헌은 경포대 옆 강릉 초당마을이 고향입니다. 아버지 허엽, 두 오빠 성과 봉, 동생 균 그리고 초희. 이 다섯을 허씨 5문장이라 합니다.
자유분방한 가풍 속에서 난설헌은 어릴 적부터 글을 배웠습니다. 여덟 살 때 쓴 글 한 편에 세상이 놀랐고, 이후 난설헌은 신동이라 불립니다. 하지만 남자 세상에서 천재 여인의 삶은 기구하게 흘러갑니다.
나이 열다섯에 혼인한 신랑은 글공부를 핑계로 기생집을 오갔고, 각시는 밤이면 신랑을 기다리며 시를 씁니다. 어렵게 가진 두 아이를 일 년 간격으로 전염병으로 잃습니다. 그사이에 친정은 조금씩 쇠락해 가고 뱃속에 있던 아이마저 유산을 합니다. 스물세 살이었습니다.
지난해 사랑하는 딸을 잃었고
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슬프고 슬픈 광릉 땅이여
두 무덤이 마주 보고 있구나
(중략)
아아, 너희들 남매의 혼은
밤마다 정겹게 어울려 놀고 있으리
황대 노래를 부질없이 부르며
피눈물로 울다가 목이 멘다
상명지통(喪明之痛), 눈이 멀 정도로 참담한 어미가 쓴 시 '곡자(哭子·자식을 잃고 운다)'입니다. 난설헌은 그해 이런 시를 씁니다.
'스물일곱 송이 부용꽃(芙蓉三九朶)
붉은 꽃은 지고 달빛에 서리가 차다(紅墮月霜寒)'
- '꿈속에 광상산에서 노닐다(夢遊廣桑山)' 中
4년 뒤 봄날, 초희는 "부용꽃이 서리에 맞아 붉게 되었다"고 말하고선 목욕재계를 한 뒤 세상을 떠납니다. 1589년 3월 19일, 우리 나이로 스물일곱 살이었습니다. 그제야 남자들은 세상을 잘못 만났고 여자로 잘못 태어났고 남편을 잘못 만난 천재 문장가라며 추앙합니다. 남정네들의 이기심이 번뜩번뜩한 치사한 이야깁니다. 동생 허균이 편찬한 시집은 중국과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중국에서는 그녀의 화신이라 자칭하다가 "나는 왜 스물일곱인데 살아 있나"라고 좌절한 시인도 있었다지요.
그렇게 초희는 슬프게 살았습니다. 혁명을 꿈꾸던 허씨 집안은 멸문지화를 당해 세상에서 잊혔고요. 잊기에는 그 생(生)이 슬프기에, 훗날 사람들은 이 솔숲 어딘가에서 그녀가 태어났다고 짐작하고 기념관과 공원을 세웠습니다.
비범했던 두 오누이의 삶
어엿한 기와집 안에는 그녀를 기리는 여러 징표들이 보입니다. 그녀 시를 적은 족자, 위패, 그리고 그녀의 초상화. '가인(佳人·용모가 아름다웠다)'으로 남정네들이 묘사했던 그녀의 기품이 느껴집니다. 시들은 한 수 한 수 서럽고 애잔합니다. 마당에는 작약들이 바야흐로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담장 바깥으로 나서니 솔숲이 반깁니다. 낙락장송들이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줍니다. 공원 옆에는 기념관이 있습니다. 난설헌과 허균 남매의 행적과 작품을 전시한 공간입니다. 다례(茶禮) 시연도 하는 곳입니다. 경포호에는 무심한 햇살이 반짝입니다.
초당마을에서 순두부로 요기를 합니다. 초당은 아버지 허엽의 호입니다. 도시에서 맛보는 매운 두부 대신, 담백한 전골, 담백한 손두부, 담백한 구이로 속을 채웁니다. 그리고 사천진리로 갑니다. 허균의 흔적이 그곳에 있습니다.
경포대에서 북쪽으로 30분을 가면 나오는 교산(蛟山) 끝자락입니다. 교산(蛟山), '이무기의 산'은 허균의 호이지요. 이무기의 승천을 꿈꿨던 혁명가 허균은 역적으로 몰려 능지처참을 당했습니다. 산이 끝나는 바닷가는 사천진해변입니다. 큼직한 바위들이 있습니다. 교문암(蛟門岩)이라 새겨져 있습니다. 비범한 두 오누이의 삶을 끌어안고 바위들은 파도를 맞습니다.
초희와 작별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수도권에 사는 분이라면 한 군데가 더 남았습니다. 중부고속도로 곤지암IC를 지나며 왼편을 바라보면 경수산 중턱에 무덤이 보입니다. 난설헌의 묘입니다. 안동 김씨 서운관정공파 문중 선산입니다. 난설헌은 일찍 잃은 두 오누이 무덤 옆에 잠들어 있습니다.
강릉과 서울을 오가는 내내 꿈길처럼 먹먹했습니다. 자식을 떠나?립?어미, 설움 속에 요절한 여자….
이 잔인한 2014년 5월, 꿈길밖에 길이 없습니다.
여행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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