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황운하] 인간이 몸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지는 110여 년이 됐다. 1895년 독일의 빌헬름 뢴트겐이 X선을 찾아내 사람의 몸을 열어보지 않고도 몸속을 들여다보는 영상의학 시대를 열었다. 산 사람의 뇌를 관찰할 수 있게 된 것은 1972년 CT(컴퓨터단층촬영)가 개발되면서부터. 이후 1975년 PET(양전자 방출 단층촬영), 1980년 MRI(자기공명촬영)가 선보이면서 뇌 영상이 진화했다.
CT, 입체영상 기술의 첫 문 열어
1세대 의료영상기기인 X선 사진이 컴퓨터와 결합해 진화한 것이 CT다. X선이 발견된 지 80여 년 만에 새로운 개념의 영상기기가 나온 것이다. CT는 여러 방향에서 촬영한 X선의 데이터를 컴퓨터로 합성해 재구성한 것으로 인체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최초의 영상기기다. 기존의 X선 평면사진에서 5~10㎜ 간격의 횡단면 영상을 얻어, 입체사진 영상기술의 첫 문을 열었다.
해상도가 우수하고 인체 내 조직 간의 밀도 차이도 구별할 수 있다. 내장·심장·폐 등 움직이는 장기를 촬영하는 데 적합하다. CT는 교통사고 등으로 머리를 다쳐 발생한 급성 뇌출혈을 다른 영상기기보다 잘 잡아낸다. 요즘엔 찍는 시간을 단축하고, 방사선 피폭량을 줄인 장비들이 나오고 있다.
PET, 암세포 위치·변화 감지 우수
PET는 체내에서 특정 물질(방사성동위원소)이 이동하는 것을 추적해 영상을 얻는다. 특히 방사성동위원소가 암 세포처럼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세포에 반응해 특유의 빛을 내는 원리를 이용했다. 뇌에 암이 전이됐다면 암을 추적하는 방사성동위원소를 집어넣어 암 덩어리의 형태를 그려낸다. 또 이 원리를 이용하면 약을 먹었을 때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알 수 있다.
PET의 이론은 1975년 우리나라 조장희 박사(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장)가 세웠다. PET 검사를 받으려면 먼저 6시간 금식 후 방사성동위원소 물질을 주사한다. PET는 CT나 MRI와 달리 전이암이나 여러 부위에 동시다발로 생긴 암을 한꺼번에 찾아낼 수 있는 것이 장점. 두경부암·위암·폐암·유방암·갑상선암·악성림프종 등을 조기에 찾아낸다.
고해상 MRI, 0.3㎜ 뇌 미세혈관도 잡아내
인체는 70%가 물이다. 산소와 수소 원자로 구성된 물은 신체 부위에 따라 분포가 조금씩 다르다. MRI는 수소 원자핵에 강한 자기장이 걸리면 핵이 공명을 일으키며 움직이는 원리를 이용했다. 방사선을 이용하지 않고 몸의 자기적인 성질을 측정해 인체 내부를 영상화한다.
거대한 원형 자석으로 만들어진 기기에 환자가 누우면 강력한 자기장을 걸어 원자핵의 이동을 추적, 영상을 만들어낸다. 수㎜ 크기의 이상 병소도 잡아낼 정도로 해상도가 우수하다. 검사시간은 30~40분 정도.
MRI는 인체 중 물이 많은 근육이나 연골 등 연부조직의 질환을 검사하는 데 유용하다. 뇌종양이나 뇌출혈 등 뇌 관련 질환에도 두루 쓰인다. 현재 상용화된 1.5 또는 3.0테슬라(자장의 단위) MRI는 해상도가 떨어져 뇌의 각 부위 경계가 모호하고 뇌의 미세혈관은 볼 수 없다. 최근 뇌 연구용으로 개발된 7.0테슬라(지구 자기장의 35만 배) MRI가 선명한 뇌 영상을 구현하고 있다.
장점 결합한 '퓨전' 영상 속속 등장
MRI를 기반으로 탄생한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는 인간의 의식과 감정 변화에 따른 뇌의 반응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뇌 속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등의 영향으로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혈류량과 흐름을 감지한다.
각 영상의료기기의 장점을 결합한 '퓨전 영상기기'의 개발도 이어지고 있다.
PET-CT는 암세포를 찾아낸 뒤 CT로 영상의 민감도와 정확도를 높여 암세포의 정확한 위치를 집어낸다. 암이 전이되는 모양도 볼 수 있어 암의 정확한 진단에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세포의 기능적 영상(PET)과 해부학적인 영상(MRI)을 결합한 PET-MRI가 개발을 앞두고 있다.
이 영상기기는 고해상도의 영상으로 복잡한 뇌 구조를 볼 수 있어 알츠하이머병·파킨슨병 등 뇌질환의 조기진단과 치료에 유용하다. 인간의 정서적인 변화·치료제 작용 원리 등 뇌 연구에 적용할 수 있다.
황운하 기자
도움말 가천의과대 뇌과학연구소, 강남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 정태섭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