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시장을 보고 집으로 오는데 지갑이 안 보이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들른 가게에 놓고 나온 줄 알고 혼비백산해서 뛰어가는데 시장가방 안을 보니 그 안에 들어 있잖아요. 얼마나 한심하던지…”
그러나 뇌의 병변으로 인한 기억장애는 중요하거나 잘 알고 있는 정보를 어느 날 갑자기 잊게 된다거나 기억손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특징. 따라서 이런 일상적인 기억상실은 질병으로 인한 기억장애의 신호와는 거리가 있다. 하버드대학 심리학 교수인 대니얼 L. 샥터는 일상적인 기억손실의 유형을 7가지로 분류했다. 이에 해당하면 정상범주에 속하며 심각한 기억손실이 있다고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쓰지 않으면 사라진다’…일시성
조간신문의 주요기사가 오후 되면 생각나지 않는다거나, 한 달 전 TV에서 인상 깊게 봤던 강연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혹은 20년 전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했던 철학자의 기본정보조차 기억이 안 난다. 이 모두는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는 기억력의 ‘일시성’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기억은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논리를 따른다. 정보를 습득한 직후 단기기억시스템에 저장된 기억은 다시 쓰지 않으면 금세 손실된다. 반복적으로 강화되지 않은 기억이 시간이 흐를수록 약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불확실한 초기 입력’…방심상태
열쇠나 핸드폰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는 일 등은 그 대상에 관한 정보를 뇌에 충분히 입력하지 않아 일어나는 ‘방심상태’의 기억손실이다. 방심상태는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한꺼번에 하거나 다른 사람이나 사건의 방해로 집중이 어려울 때 흔히 일어난다. 만일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 못한다면 열쇠를 두는 장소에 대해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보가 뇌에 확실하게 암호화되지 않은 것이다. 이 경우 ‘열쇠는 현관선반에 놓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습관을 들이면 방심상태의 기억손실을 막을 수 있다.
‘심술궂은 기억의 장난’…연상중단
자녀들 중 한 명을 엉뚱한 이름으로 부르거나, 평소 좋아하던 배우의 이름이 입에서만 맴돌고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다. 이것은 다른 기억의 방해로 원하는 기억을 일시적으로 재생하지 못하는 ‘블로킹’의 대표적인 예다. 찾고 있는 정보와 같은 의미공간의 다른 기억이 침입하고 침입한 기억은 더 깊이 생각할수록 강하게 의식 속에 부각된다. 제임스 딘의 유작 ‘자이언트’를 떠올리고 있는데 대신 ‘이유 없는 반항’이 떠오르는 것도 이런 현상 때문이다.
‘세부사항 기억능력 저하’…착오
가게폐업 소식을 광고를 통해 알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이웃이 전해줬다거나, 스스로 책 제목을 붙였는데 이미 출간된 것일 경우가 있다. 이는 기억의 출처를 잘못 아는 데서 비롯되는 ‘착오’로, 나이가 들수록 특정상황의 세부사항을 암호화하고 저장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 일어난다. 착오는 범죄의 잘못된 증언이나 표절 등의 경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지만 기억장애의 신호는 아니다. 중요한 것을 기억하고 싶을 때 세부사항을 주시하는 습관을 들이면 착오 형태의 기억손실을 줄일 수 있다.
‘믿고 싶은 대로 기억한다’…암시
자녀가 축구경기를 하는데 상대팀이 골을 넣었다고 가정해 보자. 부모는 골을 넣은 선수의 손이 공에 닿았다는 이유로 골을 인정할 수 없다고 불평한다. 사실 그 선수가 손을 사용했는지 주의해 보지 못했지만 이미 부모의 마음속에서는 상대선수가 손을 사용하는 장면이 실제 본 것처럼 기억된다. 이처럼 이후 습득한 정보에 의해 기억이 왜곡되는 것을 ‘암시’라고 한다. 다른 권위자에 의해 넌지시 암시를 받으며 조사받은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일을 경험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현상이다.
‘기억의 덧칠’…편견
대학시절 졸업식 연설에 대해 두 친구가 회상한다. 한 친구는 감동적이며 모두 집중했다고 하는 반면 다른 친구는 자기 과시적이고 청중도 지루해했다고 말한다. 어느 쪽이 정확할까? 이를 판단하기 어려운 것은 기억은 편견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편견은 개인의 개성, 신념, 경험 등 고유의 시각에 따른 기억의 왜곡이다. 사이좋은 연인은 첫 만남을 실제보다 좋게 기억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연인들은 처음부터 징조가 불길했다고 한다. 편견은 기억이 입력될 때, 그것을 되살릴 때 기억에 덧칠을 해 왜곡한다.
‘생생한 기억이 괴로워’…지속성
지속성은 기억의 손실이나 왜곡과는 반대의 현상이다. 가령 끔찍한 사건을 경험한 후 나타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인 경우, 현재의 상황과 단절된 채 과거의 끔찍했던 상황 속으로 내던져지는 것이다. 기억과 달리 ‘심리적 거리’가 없는 것이 특징이지만 뇌의 병변과는 상관이 없다. 심각한 경우 심리치료를 통해 이를 조절하는 방법을 치료받지만, 일반적으로는 존속기억을 없애는 좋은 방법은 의식하지 않는 것이다. 의식할수록 기억은 점점 더 일상을 침입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도움말: 아론 P. 넬슨의 ‘치매예방과 최적의 기억력’)
유지현 기자(prodigy@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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