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

동박꽃차와 솔잎차

추억66 2008. 3. 18. 15:03
 
[名刹名茶]1년에 단 네 통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차
청량사 지현 스님의 동박꽃차와 솔잎차

 

 

 

초파일이 들어 있는 5월은 절이 가장 분주하고 바쁠 때다. 연등을 만들고 청소를 하며 불자와 참배객을 맞을 차비를 한다. 올 초파일에는 도심을 떠나 산 속 깊이 자리한 좋은 절을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심으로써 ‘차공양’을 해보면 어떨까. ‘차 한잔에 모든 행복이 깃들어 있다 樂在一碗中’고 했다.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만들어주는 사찰의 명차를 만나보자.

 

photo01 청량산국립공원 안에 위치한 청량사는 고도가 꽤 높다. 한참을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 절에 도착했다. 절을 경유해 등산 코스가 있어서 주말이면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이 들렀다가 가는 곳이다. 특히 사진 찍는 사람들 사이에 빼어난 운무가 피어나는 절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청량사는 ‘구름으로 산문을 지은 도량’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나 보다. 청량사는 산사음악회를 가장 먼저 연 곳이기도 하다. 가파른 산중에 층층이 있는 절은 무대와 객석을 저절로 이루게 한다. 음악회가 아니라 차 한잔을 얻어 마시기 위해 이곳에 들렀다. 자연으로부터 탄생된 차로 마음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고자 한다.


청량사 심우실尋牛室에서 지현 스님을 만났다. 절의 가장 안쪽에 있는 심우실에서는 큰 유리창으로 청량산의 모습과 절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마음을 찾는 방’이라는 뜻의 심우실은 마음속에 일어난 생각을 버리기도 하고, 그 생각을 따라가기도 하는 곳이란다. 가파른 산비탈에 지어진 절이라 건물을 올리기 힘들었을 듯하다. 하지만 그 덕에 절에서 보는 경치만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구름이 우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지현 스님은 이곳에서 새벽 4시쯤 낙동강에서부터 올라오는 하얀 운무가 절의 종각까지 밀려오는 것을 보며 하늘이 바다가 됨을 본다고. 울면서 올라온 구름들은 동쪽에서 해가 뜨면 다시 밀려 나가는 장관을 이룬다.


스님을 찾아간 때는 마침 동박꽃차를 막 만들 무렵이었다. 3월 말에서 4월 초까지 개나리보다 먼저 피는 동박꽃은 봄의 전령사다. 그 꽃을 따서 말린 것이 지현 스님의 동박꽃차다. 동박꽃차는 봉오리가 탁 터졌을 때 따서 바로 만들어야 한다. 때를 놓쳐 일주일만 지나도 절정의 노란색이 변해버린다. 차를 우려낼 때도 오랫동안 두지 않는다. “온지도 간지도 모르는 것이 봄이랍니다. 이 동박꽃차도 그래요. 오래 두지 못하고 바로 마셔야 원래 색과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물을 붓자마자 유리 다관 안이 샛노란 빛으로 물든다. 주전자 안이 조명을 비춘 것처럼 밝다. 스님은 바로 차를 숙우로 옮기고 잔마다 동박꽃 한 송이씩 띄워 차를 따른다. 맑고 경쾌한 향이다. 차는 색色과 향香, 미美로 마신다는 말이 참으로 맞다. 눈과 코와 혀가 즐거워지니 저절로 힘이 난다.

 

photo01

이 동박꽃은 절 주변의 산에서 자생하는 것을 채취한 것이다. 따온 꽃은 전깃불조차 가까이 하지 않고 음지에 펼쳐서 말린다. 꽃이 마르는 동안에는 조금의 전기 불빛만 쬐어도 자극이 되어서 꽃의 색이 변하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이라고. 꽃이 바짝 마르면 이것을 찜통에 넣고 김을 쐬어 독기를 뺀다. 찜통을 불에 올리고 약 30분 정도 끓여 김이 충분히 오르게 한 후, 말린 꽃을 넣고 단 1분에서 1분30초 정도만 끓인다. 이렇게 하면 꽃의 독기가 모두 빠져나간다. 그 이상 김을 쐬면 차가 변질될 우려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쪄낸 꽃은 다시 가지런히 펼쳐서 이번에는 쨍쨍한 봄햇볕에 내놓아 말린다. 그러면 꽃의 색이 변하지 않고 오랫동안 노란색을 유지한다. 산 주변에 자생하는 나무에서 꽃을 따서 만들기 때문에 양이 많지 않다. 올해 지현 스님은 동박꽃차를 100g짜리 4통 정도를 만드셨다.
 
1.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청량사로 오르는 길과 절을 빙 둘러 연등 행렬이 이어진다.
2. 청량사에는 작은 방이 여러 개 있다. 절에 먼저 연락을 하면 누구나 하루를 묵을 수 있다고. 새소리, 달빛이 비친 산의 모습, 새벽의 운무 등을 모두 구경하려면 하루도 짧다. 3 심우실 앞에 놓인 스님의 검정 고무신. 기우고 기워서 간신히 명을 유지하고 있어 보이는데 신으면 발이 참 편할 것 같다.

절에서 가장 일찍 일어난 다각은 새벽 예불도 들어가지 않고 차를 만든다.
이른 새벽의 우물, 아무도 마시지 않은 새 물을 떠야 그 차의 맛이 깊다.


청량사를 다녀간 사람이라면 전통차를 마실 수 있는 다원을 기억할 것이다. 목마른 등산객들이나 나들이하는 가족들이 편하게 쉬어 갈 수 있는 다원이 절 입구에 마련되어 있다. 지현 스님은 이곳에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이름을 붙이셨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어떻게 되겠어요? 소리가 더 커져서 시끄러워질 수도 있고, 서로 만나서 없어질 수도 있고, 더 아름다운 소리가 되기도 하지요. 사람의 만남도 그런 것 같습니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듯 여러 가지 모양이 되지요.”


동박꽃차는 그 생산량이 너무 적기에 이곳에서는 맛볼 수 없지만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에는 독특한 스님의 차가 두 가지 있다. 바로 ‘바람소리차’와 ‘솔바람차’가 그것이다. 바람소리차는 솔잎을 물과 함께 섞어서 곱게 갈아 즉석에서 만들어 먹는 것이고, 솔바람차는 솔잎을 발효해서 만든 차다. 시원하게 한잔 하라며 스님이 권한 솔바람차를 마셔보았다.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던 커다란 단지에서 따라낸 솔바람차는 빛깔이 참 고왔다. 솔잎을 발효했다고 하여 맛이 농축되고 강할 줄 알았으나 오히려 그 반대다. 아주 옅은 솔향에 부드러운 탄산맛까지 느껴진다. 스님은 발효를 해서 만들기 때문에 1% 정도의 알코올이 있다고 설명해주셨다. 오묘한 힘이 있는 시원함이다. 




 

 
1. 최근에 완공한 심검당에는 수십명이 모일 수 있는 큰 방이 있다. 벽에는 공양 때 쓰는 발우가 면보에 쌓여 가지런히 놓여 있고, 방바닥에는 찻잔이 가지런히 놓여 언제라도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해두었다.

 

photo01

5월이면 스님은 올해도 솔바람차를 만드실 것이다. 솔바람차는 봄에 나는 솔잎을 쓴다. 소나무도 겨울에는 겨울잠을 자다가 봄이 되면 땅에서 물기를 듬뿍 빨아들인다. 그리고 작은 솔방울이 파랗게 달리기 시작하는데, 이때가 솔바람차를 만들 때다. 솔잎은 물에 슬쩍 씻어 물기를 닦고 깨끗한 오지항아리에 반 정도를 채운다. 그 위에 배를 썰어 한 겹 깔고 설탕물을 붓는다. 설탕물은 물이 팔팔 끓을 때 설탕을 넣어 간을 맞춰야 하는데, 맛을 봤을 때 달착지근한 정도를 맞추는 것이 관건이다. 간이 약하면 만들었을 때 식초가 될 수도 있다. 뜨거운 설탕물을 40℃정도로 식혀서 단지에 붓고 밀봉한다. 보름 정도가 지나면 맛이 연하게 나기 시작한다. 솔잎차의 향과 색을 더하기 위해 솔잎만 꺼내어 절구에 빻은 다음 이것을 거즈에 싸서 다시 단지에 넣는다. 차에 색과 향이 우러나면 솔잎을 모두 건져내고 냉장고에 보관한다. 솔바람차를 보름 이상 발효시키면 술맛이 나기 시작하므로 보름 정도가 적당하다. 그리고 6월만 되어도 날이 더워져 초가 되기 쉬우므로 솔바람차는 봄에 만들어야 한다고. 이렇게 만든 차는 냉장고에 보관하거나 땅에 묻어 두면 1년 내내 마실 수 있다.


스님들은 대부분 차를 좋아한다. 자연 속에서 수도에 정진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지현 스님은 큰 절에 스님들이 모여 대중 생활을 할 때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절에 있는 모든 스님들과 식솔들이 모두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새벽 예불을 드리는데, 유일하게 법당에 안 들어가는 사람이 한 사람 있다고 한다. 바로 차만 끓이는 스님인 ‘다각’이다. 다각이 된 스님은 새벽 예불에서는 제외되지만 절에서 가장 일찍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아무도 손대지 않은 새 물을 우물에서 떠서 차를 끓여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기도를 드릴 때 다각이 대중방에서 차를 끓여 두면 예불을 끝낸 스님들이 내려와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서로 공부한 것을 이야기하며 법담을 나눈다. 지현 스님도 매일 새벽이면 절에 있는 스님들을 심우실로 모은다. 함께 차를 마시는 1시간, 하루 중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때를 즐기기 위해서다.

 
1. 절로 오르는 가파른 길이 나무로 만든 수곽 덕분에 시원하게 느껴진다. 수십 개의 통나무가 이어지는 장관을 이루는 이 수곽은 청량사 운산 스님이 직접 나무를 파서 만든 것이다. 2 지현 스님이 만든 차와 전통차를 마실 수 있는 다원,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의 내부.

 

photo01
 

찾아가는 길 서울 방면에서는 중앙고속도로 풍기IC로 나와서 5번 국도를 따라 영주시로 들어가고 36번 국도를 타고 봉화읍 봉화삼거리까지 간 다음 좌회전하여 918번 국도를 따고 명호 방향으로 간다. 그곳에서 안동 방향 쪽으로 물길을 따라 11km 정도를 달리면 왼쪽에 청량사 이정표가 나온다. 054-672-1446, http://www.cheongryangsa.org/


주변 관광지 안동 지역과 인접하므로 안동 하회마을, 병산서원, 도산서원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도산서원에서 절과 인접한 가성까지 강을 따라 1시간 정도 코스의 산책길 ‘선비길’이 곧 생길 예정이다.

 
1. 지현 스님의 솔바람차. 솔잎을 발효시켜 만든 차로 약한 탄산 맛이 느껴진다. 시원하게 마시는 차로 갈증을 해소해준다. 2 청량사의 주지 지현 스님. 스님의 뒤로 보이는 5층 석탑이 있는 곳이 산사음악회가 열릴 때 무대가 되는 곳이다. 3 노랗게 우러난 동박꽃차를 다관에서 숙우로 따라내고 있다. 숙우에 차를 옮기는 것은 차가 너무 우러나지 않도록 하고, 잔마다 고른 맛이 분배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4 3월 말에 잠깐 동안만 피는 동박꽃을 따서 만든 동박꽃차. 지현 스님은 이 꽃과 이 차를 ‘봄의 전령사’라고 하신다.
 
 
 
행복이 가득한 집

 

 

'茶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차의 종류 & 좋은 차 고르는법·보관법  (0) 2008.04.03
자생차  (0) 2008.03.18
백련꽃차와 구절초차  (0) 2008.03.18
t e a , t h e 茶  (0) 2008.03.13
피부 노화에 좋은 대추차  (0) 2008.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