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노을 속으로 가는 시간
비가 세상을 내려앉히면
기억은
노을처럼 아프게 몸을 푼다
부리 노란 어린 새가 하늘의 아청빛 아픔을
먼저 알아 버리듯
어린 날 비 오는 움막이여,
왜 노을은 늘 비의 뿌리 위에서
저 혼자 젖는가
내 마음 한없이 낮아
비가 슬펐다
몸에 달라붙는 도깨비풀씨 무심코 떼어 내듯
그게 삶인 줄도 모르고
세월은 깊어서
지금은 다만 비가 데려간
가버린 날의 울음소리로 비 맞을 뿐
아득한 눈길의 숲길, 말들의 염전
시간은 길을 잃고
나그네 아닌 나 어디 있는가
추억을 사랑하는 힘으로
세상을 쥐어짜
빗방울 하나 심장에 얹어 놓는 일이여
마음이 내려앉아 죽음 가까이 이를 때
비로소 시간의 노을은 풀어 논 아픔을 거두고
이 비의 뿌리 한 가닥
만질 수나 있을 것인가
詩 / 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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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무너질 것도 없는데 비가 내리고 어디 누우나 비오는 밤이면 커튼처럼 끌리는 비린내. 비릿한 한 웅큼조차 쫓아내지 못한 세월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밤이 깊어가고 처벅 처벅 해안선 따라 낯익은 이름들이 빠진다. 빨랫줄에 널린 오징어처럼 축 늘어진 치욕. 최영미/속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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