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흔히 봄은 ‘여자의 계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구분한다. 여자가 봄에 민감한 데 비해 남자는 가을에 더 남자다워지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는 날씨의 작용이 크다. 날씨는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도 하고 가라앉게도 하지만, 이런 기분 변화가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에 의외로 큰 영향을 받아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이를 ‘계절성 정동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라고 한다.
특히 가을·겨울에 심하며, 가을엔 남자들의 증상이 두드러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여자들에게 더 많다. 원인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계절에 따른 일조량 변화와 관련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남자보다 여자가 더 민감
우리의 뇌에는 ‘생물학적 시계’가 있어 생활리듬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이 시계는 계절에 반응하는데, 특히 하루 중 낮의 길이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오랫동안 인간의 생활리듬은 낮과 밤의 주기에 맞춰져 해가 뜨면 눈을 뜨고, 밤이 되면 잠을 잔다. 겨울철 우울증의 경우 햇빛의 양과 일조시간의 부족이 에너지 부족과 활동량 저하, 슬픔, 과식, 과수면을 일으키는 생화학적 반응을 유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생물학적 시계가 외부의 변화에 잘 적응하도록 돕지만 계절성 우울증을 가진 경우에는 환경 변화에 반응하는 능력이 정상인보다 크게 떨어져 문제가 된다.
우울증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무기력감이다. 계절성 우울증 역시 기분이 우울해지고, 원기가 없으며, 쉽게 피로하고, 의욕 상실 증세를 보이는 것은 일반 우울증과 똑같다.
그러나 식욕 저하를 보이는 일반 우울증과 달리 계절성 우울증의 경우 많이 먹고, 단 음식을 찾는다. 왕성한 식욕 탓에 탄수화물 섭취가 많아져 살이 찌며, 잠이 많아져 종일 무기력하게 누워 지내는 경우가 많다. 잠에 관여하는 멜라토닌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런 증상은 통상 봄이 되면 사라진다.
●20대 이후 빈발… 나이 먹으면서 감소
최근 연구에 의하면 일반인 중 약 15%가 겨울철에 기분이 울적함을 경험하며, 2∼3%는 계절성 우울증을 겪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런 계절성 정동장애는 20대 이후에 빈발하다가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서 점차 감소한다.
치료를 위해서는 매일 일정한 시간 동안 강한 광선에 노출시키는 광선요법을 쓰거나 항우울제를 투여한다. 우울증이 아니라 약간의 우울감을 경험할 때도 주간에 야외 활동량을 늘리는 등 햇볕을 많이 받게 하면 증상이 눈에 띄게 개선된다.
하루 30분 이상 햇볕을 쬐면 비타민-D가 생성돼 뇌 속의 세로토닌 분비를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아침에 일어나 실내의 불빛을 밝게 하고, 낮에는 커튼을 치지 않으며, 의자는 창문을 향해 놓는 것이 도움이 된다.
●무기력증 2주 이상… 전문의 찾아야
일정한 시간에 규칙적으로 자는 습관을 들이고 균형 있는 식생활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비타민을 충분히 섭취하고, 하루 8잔 정도의 수분을 섭취해 인체 신진대사를 활성화하는 것도 효과적인 예방법이다.
또 야외활동을 늘리거나 걷기·조깅 등의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운동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에너지를 높여주며, 정신적·신체적 만족감을 준다.
그래도 우울한 기분이 들 때는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거나 가족·친구·이웃·동료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무기력한 증상이 2주 이상 계속되면 부담 없이 전문의를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도움말 한림대의료원 한강성심병원 정신과 이병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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