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

명동성당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미사 봉헌

추억66 2009. 5. 31. 15:41

명동성당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미사 봉헌

 

본디오 빌라도처럼 이명박 정부의 부정한 이름도 기억될 것..

정의구현사제단, 투신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위해 한국천주교회 차원에서 두번째 추도미사가 봉헌되었다. 이는 당일 새벽 봉하마을에서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추도미사를 봉헌한 뒤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과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사회적 복음을 갈망하던 이들이 공동으로 봉헌한 것이다.

 

이날 미사는 김병상 몬시뇰(인천교구)의 주례로 열렸는데, 참석자들은 명동성당 본당뿐 아니라 꼬스트홀까지 가득 메워 약 3천여 명이 기도와 눈물로 미사를 진행했다.

 

미사 강론에서 김병상 신부는 “그들이 모두 하나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가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라는 성경말씀을 중심으로 '화합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위하여' 헌신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김 신부는, 우리가 지난 몇 달 간격으로 김수환 추기경과 노무현 "한국 사회에서 “바보”라고 불리던 두 분의 죽음을 맞이했다"고 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작스럽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아 지금 전 국민이 한없는 충격과 허탈과 슬픔 속에 빠져 있으며 "오늘 저녁 우리를 이 자리에 모이게 만든 것도 이 슬픔과 충격"이라고 했다. 

 

"어렵사리 사법시험에 합격하자마자 인권변호사의 길을 택함으로써 돈 잘 버는 법조인의 길을 포기한 바보로서, 이 땅의 민주화를 제도정치 안에서 구현해 보려고 낙선에 낙선을 거듭하면서 영남인들의 지역감정에 맞서던 바보로서, 대통령이 되어서도 경찰, 검찰, 국정원이라는 공안기관을 개인적 집단적 이기심에 전혀 동원하지 않았던 바보로서, 혼탁한 한국정치판에서 현대사에 가장 깨끗하게 국정을 수행하면서 국민의 기본권을 법률적으로 확립하고, 한미관계를 비롯하여 국제사회에서 균형을 도모한 바보로서, 퇴임하고서도 바보처럼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꾼이 다 되어 손녀의 유모차를 끌고 봉화 마을을 찾아오는 방문자들을 따뜻이 맞이하던 삶이, 그분의 비극적 최후와 더불어 국민의 정치적 양심과 우리 크리스천들의 신앙에 깊은 성찰을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저녁 이곳에 모였습니다." 

 

 

 

 


 

한편 김 신부는 이 추도미사가 본래 "한국천주교 주교단이 집전했어야" 했으나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등 단체들이 주관하게 된 데 유감을 표명했다. "1979년 10월 26일, 고박정희 대통령이 술자리에서 부하에게 총에 맞아 사망했을 때, 한국천주교 주교단은, 명동대성당에서 공동으로 추도미사를 집전"했기 때문이다. 

 

한편 김 신부는 이 추도미사가 본래 "한국천주교 주교단이 집전했어야" 했으나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등 단체들이 주관하게 된 데 유감을 표명했다. "1979년 10월 26일, 고박정희 대통령이 술자리에서 부하에게 총에 맞아 사망했을 때, 한국천주교 주교단은, 명동대성당에서 공동으로 추도미사를 집전"했기 때문이다. 

 

이어 이날 참석한 사제들이 "죽음을 애도하는 검은색 영대가 아니라 부활절의 기쁨을 상징하는 흰색 제의와 영대를 입고 있다"면서 조문행렬을 통해 "모든 이들의 가슴 속에 그분이 살아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인권보호와 민주화를 위하여 투신해온 그분의 인생 여정으로 미루어, 우리는 그분이 죽음을 결행하는 순간 자기 육체의 자그마한 테두리에서 벗어나와 한반도 역사와 운명 전체 속으로 스며들었고, 그곳에서 하느님 눈에 의롭고 평화로운 방향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밀고 가는 원동력으로 자리 잡았으리라는 것이 우리 신앙에서 우러나는 확신"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 신부는 민주열사들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독재와 반민족, 반인권의 범죄자들이 동족에게 자행하는 죄악을 도맡아 짊어졌던 무고한 희생자들의 신음과 눈물을 도맡아서 지고 가신 봉헌"이라고 평가하면서, "우리가 미사 때마다 입으로 고백하는 대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Agnus Dei qui tollis peccata mundi)의 모습을 닮은 분들"이라고 말했다. 

 

"그분이 세례 받고서도 정규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다고 흠잡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분이 현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시다(Deus caritas est)」에서 가르치신 “사회적 사랑”(caritas socialis)를 살아간 신앙인이었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서 25장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최후심판에는 우리의 세례명, 우리의 주일미사 참례, 판공성사, 교무금 납부에 관해서 심판자께서 한 마디도 묻지 않으심을 유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남북으로 분단되고, 영호남으로 분열되어 있으며, 부귀와 권세를 독점하고 있는 기득권층과 분배를 요구하는 빈곤층으로 대립되어 있음을 항상 개탄해 왔다"면서 "그러나 현 정부는, 국민의 커다란 지지를 받으면서 집권하자마자, 잃어버린 10년!을 복창하면서, 그래도 그 10년간 이루어진 국민의 화합과 정치사회의 소통을 깨뜨리는데 앞장섰다"고 우려감을 표시했다. 

 

김 신부는 현 이명박 정부등 수구 기득권층이 공포에 빠져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 정부에서 임명한 기관장들과 실무자들을 합법적 임기 중에 내쫓았으며, 경찰은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용산 철거민들을 불태워 죽이고도 되레 희생자 가족들을 구속하는 철면피에서도, 국민은 당신들의 겁먹은 눈을 보았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나아가 "지난 10년간 정부가 이룩한 모든 치적과 정책을 무너뜨리고 폐기하고 기억에서 말살시키는 수작"을 부리고 있으며, "일본식민시대를 그리워하고, 대한민국 헌법전문에 명기된 4.19 정신을 폄하하고, 민족의 정기인 3.1 정신을 멸시하고, 대한민국의 모체인 임시정부를 무시하는 발언과 조처가 예사로 자행되고, 이런 반민족 행위를 이념으로 삼는 단체들이 결성되는 허세 뒤에서" 공포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김 신부는 "유대인 지도층이 예수님을 처형한 다음에도 예수의 무덤에 경비병을 세웠듯이, 요 며칠간, 이미 서거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조의를 표하러 창덕궁 대한문 앞으로 모여오는 시민들을 전경들로 에워싸서 위협하고, 시청 앞 광장에 못 들어가게 전경버스로 둘러치고, 촛불만 보면 눈이 뒤집히던 그 치졸함"에서 그들이 사로잡혀 있는 공포를 읽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신부는 "이 정권을 에워싸고서 증오와 분열과 전쟁을 부추기는 수구언론과 수구성직자들과 거리를 두라"고 조언했다. "현 정부에 측근인 일부 성직자들의 극단적인 언행은 마치 한국에서 종교전쟁을 불사하겠다고 나서고, 반정부 시위에 나서는 사람들을 모조리 학살하라고 외치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제발 부탁이니, 사랑의 하느님의 복음을 설교하는 성직자가 민족과 국가사회에서 증오와 분열을 가르치는 전도사가 되지 말라"고 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검찰의 무리한 수사" 때문이라며, 검찰을 믿지 않는 것은 검찰은 "1980년 군사반란을 일으켜 광주시민을 무수히 학살하고 7000억과 4000억을 부정으로 축재한 전두환, 노태후 전직대통령에 대해 불기소처분을 내렸던 집단"이며 "사제단이 뇌물공여자로 폭로한 삼성재벌의 수천억 불법상속이나 뇌물공여를 무혐의 처리한 집단"이며 "무수한 조작간첩사건들과 긴급조치위반 처벌 등의 인권유린과 반민주 악행" 저지른 집단이기 때문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대한민국 검찰은 전직 대통령들의 공적과 기업인의 공헌을 정치적으로 고려하여 7000억, 4000억, 8000억 부정축재를 조사도 하지 않거나 불기소하는 지극히 관대한 집단"이므로, "최고통치자의 의지와 결단이 없었다면, 한 전직 대통령의 가족이 대통령 본인 몰래 십 몇 억을 기부 받은 사건을 저렇게 다루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물으며,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소망교회의 독실한 신도"로서, 세계 20억의 크리스천들이 주일마다 성당과 교회에 모여 함께 염송하는 '사도신경'의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음을 믿나이다.”라는 귀절을 인용하며, "그처럼 대한민국의 앞으로의 역사는 수백 년을 두고 '이명박 정권하에, 임채정 검찰총장의 기획수사에 의해서, 대한민국 제16대 노무현 대통령이 죽음을 당하였다.'라는 구절을 새기고 되풀이하리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경고했다. 

 

미사 중에 정진호 신부는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대표해서 추도사를 낭독했다. 추도사에서는 "사람 사는 세상, 그 세상은 당신이 시대에 투신했던 세상이고, 이젠 역사에 투신한 세상이 되었다"면서 "투신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제 우리는 진보하겠다"고 결의를 밝히면서 "민주와 인권과 자유와 통일을 향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자" 하니 지켜봐 달라고 고인에게 부탁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

 

 

 

 

 

 

 

 

화합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위하여


-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미사 강론 -

 

 

                                                                                                  - 김병상 몬시뇰 사제단 고문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가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1. 두 “바보”의 죽음



우리는 몇 달 간격으로 한국 사회에서 “바보”라고 불리던 두 분의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이 사회의 존경받는 어른으로서, 지난 40년간의 군부독재 하에서 약한 자들을 대신하여 발언하시고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당신을 가리켜 “바보”라고 부르시면서, 고결한 성직자의 삶을 마치고 전 국민의 애도를 받으신 것이 불과 석 달 전입니다.

그리고 또 한분은 그분의 정치 스타일을 보면서 많은 지지자들이 “바보 노무현”이라는 애칭을 드린 전 대통령이며, 그분의 급작스럽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아 지금 전 국민이 한없는 충격과 허탈과 슬픔 속에 빠져 있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를 이 자리에 모이게 만든 것도 이 슬픔과 충격입니다.

어렵사리 사법시험에 합격하자마자 인권변호사의 길을 택함으로써 돈 잘 버는 법조인의 길을 포기한 바보로서, 이 땅의 민주화를 제도정치 안에서 구현해 보려고 낙선에 낙선을 거듭하면서 영남인들의 지역감정에 맞서던 바보로서, 대통령이 되어서도 경찰, 검찰, 국정원이라는 공안기관을 개인적 집단적 이기심에 전혀 동원하지 않았던 바보로서, 혼탁한 한국정치판에서 현대사에 가장 깨끗하게 국정을 수행하면서 국민의 기본권을 법률적으로 확립하고, 한미관계를 비롯하여 국제사회에서 균형을 도모한 바보로서, 퇴임하고서도 바보처럼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꾼이 다 되어 손녀의 유모차를 끌고 봉화 마을을 찾아오는 방문자들을 따뜻이 맞이하던 삶이, 그분의 비극적 최후와 더불어 국민의 정치적 양심과 우리 크리스천들의 신앙에 깊은 성찰을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저녁 이곳에 모였습니다.



2. 백색 영대


오늘 저녁의 이 추도미사는 한국천주교 주교단이 집전했어야 하는데,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집전하면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및 천주교인권위원회와 더불어 이 행사를 주최하고 있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고박정희 대통령이 술자리에서 부하에게 총에 맞아 사망했을 때, 한국천주교 주교단은, 명동대성당에서 공동으로 추도미사를 집전하였습니다.

오늘 저희 사제들은 백색 영대를 매고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애도하는 검은색 영대가 아니라 부활절의 기쁨을 상징하는 흰색 제의와 영대를 입고 있습니다. 봉화마을을 찾는 시민들과 어린이들의 십리길 기나긴 행렬을 지켜보면서 우리의 충격이 서서히 가시고 우리 모두의 가슴에 그분의 어떤 부활을 느끼므로, 그분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든 이들의 가슴 속에 그분이 살아 있음을 느끼므로 흰색의 제의를 입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전직대통령의 서거에 딸린 비극을 다음과 같이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는 비단 구속사업이 고통을 통하여 성취되었을 뿐 아니라, 또한 인간 고통 자체가 구속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통을 통하여 구속사업을 완수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인간 고통을 구속의 차원에까지 들어 높이셨습니다. 이리하여 인간 각자마다가 자기 자신의 고통을 겪으면서 또한 그리스도의 구속적 고통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선교황 요한바오로 2세의 사도적 서한, 「구원에 이르는 고통」에 나오는 말씀입니다(19-20항). 노무현 전대통령이 그 고통스러운 죽음을 통해서, 우리 신앙인들이 말하는, 자신의 구원과 이웃들의 구원에 동참하였으리라는 말입니다.

인권보호와 민주화를 위하여 투신해온 그분의 인생 여정으로 미루어, 우리는 그분이 죽음을 결행하는 순간 자기 육체의 자그마한 테두리에서 벗어나와 한반도 역사와 운명 전체 속으로 스며들었고, 그곳에서 하느님 눈에 의롭고 평화로운 방향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밀고 가는 원동력으로 자리 잡았으리라는 것이 우리 신앙에서 우러나는 확신입니다.

80년대 말 군부독재에 항거하여 수많은 열사들이 분신했습니다. 독재와 그 하수인들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자신을 불살라 바쳤고, 그렇게 이 땅에서 실현될 민주화를 위하여 하느님께 자기를 불살라 바친 분들 중에는 가톨릭 신자가 열 명이 넘습니다. 그들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고 타인들을 위한 사랑이라는 대의명분에서 오는 봉헌이었으므로, 우리는 그분들의 영혼을 위해서도 미사를 올렸습니다.

여기 계시는 분들 가운데 과연 누가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 자살이라면서 그분에게 돌을 던지겠습니까? 이준 열사의 자결을 누가 비난하겠습니까? 1967년 체코의 프라하에 쏘련군이 진주했을 때에 교우 청년 두 사람이 분신하였습니다. 그때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삼종기도 연설에서 두 사람의 죽음의 의미를 짚어주시면서 함께 기도하셨습니다
.


가톨릭교회가 한 때는 자살자에게 영결미사를 집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관습을 폐지한 것은 그런 배경입니다. 죽음의 순간에, 만인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자비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임종 때에 사람마다 더할 나위 없이 밝고 자유로운 빛 속에서 하느님이 마련하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민족의 역사를 향해 이타적인 결단을 내리는 은총의 순간이 주어지리라는 신학자들의 “최종결단설”이 설득력을 갖습니다. 특히 민주열사들의 경우, 독재와 반민족, 반인권의 범죄자들이 동족에게 자행하는 죄악을 이분들이 도맡아서 짊어졌고, 무고한 희생자들의 신음과 눈물을 도맡아서 지고 가신 봉헌이었습니다. 우리가 미사 때마다 입으로 고백하는 대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Agnus Dei qui tollis peccata mundi)의 모습을 닮은 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한반도의 골고타에 커다란 십자가 하나가 새로 섰음을 보고 그 앞에서 가슴을 치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세례 받고서도 정규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다고 흠잡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분이 현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시다(Deus caritas est)」에서 가르치신 “사회적 사랑”(caritas socialis)를 살아간 신앙인이었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서 25장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최후심판에는 우리의 세례명, 우리의 주일미사 참례, 판공성사, 교무금 납부에 관해서 심판자께서 한 마디도 묻지 않으심을 유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3. “화합과 소통”의 문화를 향하여


우리가 기억하기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치철학은 화합과 소통이었습니다. 이 좁은 땅덩어리가 남북으로 분단되고, 영호남으로 분열되어 있으며, 부귀와 권세를 독점하고 있는 기득권층과 분배를 요구하는 빈곤층으로 대립되어 있음을 그분은 항상 개탄해 왔습니다. 대통령 재임 5개년 동안 정치사회적으로 이 대립과 분열을 조금이라도 극복하고자 심혈을 쏟았다는 것이 정치학자들의 평가입니다.

그러나 현 정부는, 국민의 커다란 지지를 받으면서 집권하자마자, “잃어버린 10년!”을 복창하면서, 그래도 그 10년간 이루어진 국민의 화합과 정치사회의 소통을 깨뜨리는데 앞장서지 않았나, 우려됩니다.
실상 현정부가 보이는 여러 정책과 언행은 대한민국의 역사가 지난 65년간 걸어온 방향 앞에서 우리 사회의 수구 기득권층이 얼마나 큰 공포를 품고 있는지 드러나는 표지였습니다.

현 정권은 제일 먼저 수행한 일은, 전 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들과 실무자들을 합법적 임기 중에 내쫓는 것이었는데, 이 국가의 행정 질서를 영구히 훼손한 이런 횡포에서 국민이 목격한 것은 새로 집권한 수구 기득권층의 두려움이었습니다.
안전한 쇠고기를 달라고 외치는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중고등학생들과 아기 유모차를 몰고 온 젊은 엄마들마저 연행하고 조사하고 협박하는 경찰의 모습에서도, 용산 철거민들을 불태워 죽이고도 되레 희생자 가족들을 구속하는 철면피에서도, 국민은 당신들의 겁먹은 눈을 보았습니다.

지난 10년간 정부가 이룩한 모든 치적과 정책을 무너뜨리고 폐기하고 기억에서 말살시키는 수작에서도 당신들이 품고 있는 공포를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들의 공포가 하도 커서, 다음 정권이 당신들이 이룩한 모든 치적과 정책을 폐기하고 기억에서 말살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마저 못 내다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일본식민시대를 그리워하고, 대한민국 헌법전문에 명기된 4.19 정신을 폄하하고, 민족의 정기인 3.1 정신을 멸시하고, 대한민국의 모체인 임시정부를 무시하는 발언과 조처가 예사로 자행되고, 이런 반민족 행위를 이념으로 삼는 단체들이 결성되는 허세 뒤에, 당신들의 공포를 우리는 파악하였습니다.

유대인 지도층이 예수님을 처형한 다음에도 예수의 무덤에 경비병을 세웠듯이, 요 며칠간, 이미 서거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조의를 표하러 창덕궁 대한문 앞으로 모여오는 시민들을 전경들로 에워싸서 위협하고, 시청 앞 광장에 못 들어가게 전경버스로 둘러치고, 촛불만 보면 눈이 뒤집히던 그 치졸함에서 우리는 당신들을 사로잡고 있는 공포를 읽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분들을 질타하는 것은 그분들이 우리 사회의 일부요 민족 공동체의 지도적 일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수구언론의 대표자들이 내뱉듯이, 우리와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당신들을 대한민국 국민에서 제외해 버리지 않습니다. 당신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화합과 소통으로 민족을 함께 일으키고, 민주의 길을 함께 가자고, 집회를 하는 시민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초대할 뿐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사랑”을 교회로부터 배웠기 때문에 우리는 현정권이 부유층의 감세와 무절제한 재개발과 자연파괴의 대운하 사업에만 치중하여 “강부자당”이라는 별명을 듣지 말라고, “잃어버린 10년”을 내세우는 품이 마치 특정 지역이 국가예산과 고위직과 산업단지를 독식해야 한다는 주장처럼 들리지 않게 하라고 충고할 따름입니다. 하나같이 국민의 화합과 정치적 소통을 깨뜨리는 정책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정권을 에워싸고서 증오와 분열과 전쟁을 부추기는 수구언론과 수구성직자들과 거리를 두라고도 조언하고 싶습니다. 현 정부에 측근인 일부 성직자들의 극단적인 언행은 마치 한국에서 종교전쟁을 불사하겠다고 나서고, 반정부 시위에 나서는 사람들을 모조리 학살하라고 외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발 부탁이니, 사랑의 하느님의 복음을 설교하는 성직자가 민족과 국가사회에서 증오와 분열을 가르치는 전도사가 되지 마십시오.

언론은 국내 어느 한 계층의 기득권을 대변하고 옹호하는 역할보다도, 사회교육과 정화의 임무가 큽니다. 지난 5년간 수구언론이 감행한 국가지도자 깔보기는 아이들 입에서마저 “놈현”이라는 단어가 나오게 만드는데 성공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와서는 같은 아이들의 입에서 “쥐박”이라는 단어가 예사로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적어도 대통령은 기본적인 예우를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국민 모두가 “돈, 돈, 돈” 할 때에는 “공동선”이니 “분배정의”니 “화합과 소통”이니 하는 가치도 존재함을 계도하는 것이 언론의 임무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수구언론이 앞장서서 배금주의와 지역감정과 국민 분열을 주도하고 있으니 어찌 된 일입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검찰과 수구언론의 합작품이라는 국민여론을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4. 이명박 대통령과 검찰에게 드리는 말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가 대한민국 검찰이 초래한 비극이었다는 것이 지금 국민 대다수의 판단일 것입니다. 소위 “박연차 게이트”를 만들어 낸 검찰의 조사는 처음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한 기획수사였으며, 사법의 이름으로 수구언론과 공조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을 민주화 지지층을 비롯한 전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유린하는 행사였습니다. 조사 과정을 세세히 언론에 보도하고, 방문조사나 서면조사로도 충분할 사안을 검찰청까지 오게 하면서 전 국민과 전 세계 앞에서 모욕을 준 일은 말할 나위조차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나라 극우수구층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서울로 끌려오던 장면을 재현함으로써 복수를 했겠지만 두 사안은 그렇게 비교될 사안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전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검찰의 소위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순수하고 공정한 사법권 행사로 믿지 않는 까닭은, 1980년 군사반란을 일으켜 광주시민을 무수히 학살하고 7000억과 4000억을 부정으로 축재한 전두환, 노태후 전직대통령에 대해 불기소처분을 내렸던 집단이 대한민국 검찰이기 때문입니다. 저희 사제단이 뇌물공여자로 폭로한 삼성재벌의 수천억 불법상속이나 뇌물공여를 무혐의 처리한 집단이 대한민국 검찰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사위원회가 밝혀내고 있는 저 무수한 조작간첩사건들과 긴급조치위반 처벌 등의 인권유린과 반민주 악행에 대한민국 검찰이 선봉으로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검찰이 수많은 사법살인의 주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직 대통령의 서거와 전 국민의 애도를 보자 저 집단에서 아무도 사과하지 않은 채로 이제 와서 “공소권 없음”이라는 발표를 하다니 법리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얼마나 가소롭게 여기겠습니까?

또 우리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 사건의 본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는 까닭은, 전두환, 노태후 대통령에게 불기소처분을 내렸던 바로 그 검찰이 김영삼 대통령의 한 마디로 조사하고 기소하고 유죄판결을 받게 한 전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검찰은 전직 대통령들의 공적과 기업인의 공헌을 정치적으로 고려하여 7000억, 4000억, 8000억 부정축재를 조사도 하지 않거나 불기소하는 지극히 관대한 집단(?)이었습니다. 따라서 최고통치자의 의지와 결단이 없었다면, 한 전직 대통령의 가족이 대통령 본인 몰래 십 몇 억을 기부 받은 사건을 저렇게 다루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소망교회의 독실한 신도이니까 같은 신앙인끼리 알아들을 언어를 써서 말하겠습니다. 전 세계 20억의 크리스천들이 주일마다 성당과 교회에 모여 함께 염송하는 사도신경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문에는 예수님이 무죄함을 알고서도 유대인들의 압력이 두려워 사형언도를 내렸던 로마인 정치가 한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아마 인류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 지상에서 그리스도교가 자취를 감출 때까지, 그 이름이 염송될 것입니다.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음을 믿나이다.”

그처럼 대한민국의 앞으로의 역사는 수백 년을 두고
“이명박 정권하에, 임채정 검찰총장의 기획수사에 의해서, 대한민국 제 10대 노무현 대통령이 죽음을 당하였다.”라는 구절을 새기고 되풀이하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대한민국 역사의 이 신앙고백 구절이 사실과 다르거든 이명박 대통령이 밝히셔야만 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개신교 장로시니까 드리는 말씀인데,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니엘 예언서(다니 5,24-30)를 읽어 보시면서, 하느님의 손가락이 청와대 어디엔가 나타나서 “므네 므네 트켈 파르신”이라는 글자를 쓰지 않는지도 살펴보시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지난 며칠 간, 봉화마을 상가에서 십 여리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우고 노인들이며, 어린 아이들을 걸리는 부부들이며, 학생들과 청년들이 뙤약볕 밑에 줄지어 가는 저 기나긴 조문 행렬, 서울 대한문과 전국 각지의 빈소에서 촛불을 켜고 밤샘을 하는 시민들의 회한에 찬 얼굴과 눈물과 한숨에서 우리는 고인이 우리 모두에게 남기고 간 호소를 가슴에 느꼈습니다.
오늘 이 미사에서 우리가 봉독한 복음서에서 우리 주님이신 예수께서 올리신 기도가 바로 그 호소와 맞닿아 있음을 절감합니다.

“주님, 우리 국민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성부께서 성자 안에 계시고 성자께서 성부 안에 계시듯이, 우리 국민도 진보와 수구니, 영남과 호남이니, 기득권과 소외계층이니 하면서 갈라지지 않고 하느님 우리 안에 하나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라고 이 미사 중에 기도드립시다. 그리고 이런 기도의 가르침을 일평생 실천코자 노력하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혼이 주님 품에서 안식을 얻도록 유가족과 함께 기도하면서 추모 미사를 계속하겠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추도사

 

투신(投身)의 삶을 살다 간 노무현


 

 

 


 

“주님, 당신의 정의로 저를 이끄소서.
제 앞에 당신의 길을 바르게 놓아 주소서.
그들 입에는 진실이 없고
그들 속에는 흉계만이 들어 있으며
그들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고
그들 혀는 아첨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그들이 죗값을 받게 하소서.
자기들의 음모에 빠지게 하소서.
그들의 죄악이 많으니 그들을 내치소서.
정녕 그들이 당신을 거역하였습니다.”(시편 5, 9-11)

노무현 당신은 바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습니다.
민중의 승리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2002년 12월 19일!
우리는 한순간도 TV에서 눈을 띌 수 없었고,
동시에 터져 나온 함성은 모두를 눈물짓게 했습니다.
시대에 투신(投身)한 당신이, 아니 당신을 선택한 우리가
승리하였기 때문입니다.
실로 민중의 값진 승리, 그것을 온 몸으로 보여주신 분,
그분이 당신이었습니다.

민중은 노란 손수건을 흔들었고, 돼지 저금통으로,
지나온 부정과 불의와 부패에 항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가진 것 없는 사람이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작은 진정성 하나로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가슴 벅찬 현실을
우리에게 선물로 선사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승리의 도취는 여기까지였습니다.
우리는 승리를 만끽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아니 승리를 맛보고 살아보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해 보지만,
역사에 대한 미숙한 경험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유린당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벌이는 교묘한 술책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논리가 아니었습니다.
앞뒤말 자르고 당신을 옥죄었습니다.
‘대통령 못해 먹겠다’로 시작해서 ‘놈현스럽다’면서 당신을 밀어내었습니다.
당신은 말만 잘한다고 치부해 버렸습니다.
그 후론 당신이 무슨 말만하면 말로 뭉개버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마음이 아픈 건, 나도 거기에 동조했었다는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그들의 얄팍한 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당신을 벼랑으로 내몰았습니다.

당신은 언젠가 이런 추도사를 했습니다.
“국가권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합법적으로 행사되어야 하고, 일탈에 대한 책임은 특별히 무겁게 다뤄져야 합니다. 또한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 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무입니다. 그랬을 때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확보되고, 그 위에서 우리 국민들이 함께 상생하고 통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4. 3사건 추도사 중에서)

당신은 역사의 상처를 아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민중의 아픔을 알았습니다.
민중의 가슴 속에 묻어 있는 삶의 질곡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끌어안아 주었습니다.

당신은 높은 자리에 있었지만 언제나 내려오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대통령스럽지' 못하다고 비난받았습니다.
그것이 당신과 민중을 분리시키려는 이들의 분열책동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철저히 분리시켰고, 우리는 멍청히 당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무지가 낳은 결과입니다.
그들이 당신만을 끌고 갈 때, 우리는 당신이 살아 돌아올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당신은 영영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죽음은 삶의 가장 큰 상실이 아닙니다.
가장 큰 상실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우리 안에서 어떤 것이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진정성을 믿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시대의 아픔에 깊이 빠져 있다는 것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거대한 권력과 싸우고 있다는 심각한 상황을 외면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죽여 버렸고, 그래서 상실했고,
진정 당신을 잃었습니다.

당신은 생전에 감명 깊게 본 영화로 ‘쉰들러 리스트’를 꼽았습니다.
그 영화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묘비에는 다음과 같이 씌여 있습니다.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이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한 생명의 희생으로 세상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당신의 투신(投身)은 온 몸으로 당신에게 옥죄어 왔던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버리고자 했던 몸부림이었습니다.
그 죽음의 그림자, 지금 우리를 분노케 합니다.

우리는 당신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그 슬픔의 이유는 당신의 죽음을 방기(放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안일은 4대강을 살리고 곤봉에 머리가 터지고 생명이 불에 타죽고
방송장악 음모에 노출되었습니다.
모든 권력이 당신으로 인해 얻었던 자유를 앗아가고 있습니다.
빼앗기고 보니 당신의 위대함이 새삼 크게 다가옵니다.
이것이 못난 당신의 민중입니다.

당신은 이 모든 것을 예감(豫感)이라도 했듯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낙향하였습니다.
촌부, 당신의 본래 고향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곳이 삶의 원천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듯이,
당신이 서슴없이 선택해 갈 곳이 거기뿐이었다는 것을 아는 당신,
당신은 진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을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 그 세상은 당신이 시대에 투신했던 세상이고,
이젠 역사에 투신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결국 당신은 세상에 투신을 하였고, 우린 그 의미를 이제사 깨닫습니다.
투신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몸으로 말해주었던 것입니다.
당신으로 인해 몰려드는 저 인파들을 보며, 저들 마음속에 심어준
사람 사는 세상의 의미가 이미 던져져 있었음을 봅니다.
당신은 자신을 세상에 던짐으로써 세상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진보하렵니다.
결코 여기서 멈출 수 없다는 강한 열망을 얻었습니다.
하나씩 나아가면서 민주와 인권과 자유와 통일을 향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당신의 고귀한 뜻이 반드시 실현될 것입니다.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활개 치는 세상에서.
당신은 한 점 부끄러움을, 자신의 온몸을 투신함으로써
마지막 남은 자신의 존엄을 지켰습니다.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편히 가십시오.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바침

 

 

 

 

 

- 2009년 5월 28일 새벽

 

봉하마을에서의 위령미사 강론

 

- 김인국 신부

 

 

 

 

'부엉이바위는 부활과 승천의 자리였습니다'

 

사람들이 존엄사 문제로 시끌벅적 논쟁을 벌이다 잠든 그 시간, 대한민국 제 16대 대통령님은 세상 아무도 모르게 '외롭고 슬픈 작별'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아래로 떨어지셨다'는 비보를 들으며 주님승천대축일을 맞이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신' 승천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몰라 참 난감하고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역시 존엄사라고 할 수 없는 비참한 최후였습니다. 우리 주님이야말로 슬프고 외롭게 가셨습니다. 우리 주님이야말로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별자리에서 쫓겨난 '착한 별'이셨습니다. 또 주님께서 고독하게 하직을 고하실 때 우리는 모두 그분을 두고 아주 멀리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부활 승천의 감격은 이런 모든 부끄러움과 아픔 후에 벌어진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하느님의 역사였습니다.

 

벌써 엿새째 복잡한 도심이나 고요한 산골을 가리지 않고 잠시도 쉼 없이 도도하게 이어지는 백만의 추모 물결과 이 땅 구석구석 높이높이 피어오르는 분향의 향기는 부활승천의 저 장엄했던 장면을 상상하게 해줍니다. 흩어졌던 사람들이 일제히 한자리에 모이던 바로 그날 말입니다.

 

우리는 오늘 국민들의 뜨거운 눈물 속에서 희망의 싹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영혼을 정화시키는 슬픔의 놀라운 힘을 새삼 경찬하게 됩니다. 죽어서 더 크게 산다는 생명의 신비를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부드러운 손길입니다.

 

사랑하는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의 최후에서 투신과 봉헌의 의미를 깊이 깨달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생전 당신께서 보여주신 희망과 또 놀랍게 마련해 주신 새로운 희망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옛날, 나는 달릴 길을 다 달렸노라 하시던 사도 바오로처럼 당신께서도 이승의 수고를 훌륭히 마치셨으니 승리의 월계관을 쓰고 부디 인자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품에서 편히 쉬십시오.

 

당신이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은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를 꼭 닮았습니다. 님의 간절했던 소망을 향하여 공손히 경배 드리며 삼가 저희의 분발과 헌신을 약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