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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에 쓰는 편지... /윤석주
눈시울 붉어지는 그리움 때문에
바람은 묵은 가지를 흔들 것이다.
메마른 가슴으로 사랑을 얘기할 수 없어
하늘은 재잘재잘 봄비를 또 뿌릴 것이다.
그러면 뭔가 알겠다는 듯이
잠을 자던 느티나무가
몸을 몇 번 뒤척이다가 드디어
새 이파리를 밀어 올릴 것이다.
돌각담 옆 살구꽃 봄밤 환히 밝히면
아버지 노름빚에 살림 내주고
가슴애피 얻은 어머니 세상 버리자
세상은 더이상 내가 살 곳이 아니라고
머리 깎고 먹물옷 입겠다고 떠난 순이
젊은 온 날을 욱신욱신 앓았던 그녀와의 사랑도
서른 해가 훨씬 지나 이제는
서답처럼 하얗게 바래 버렸는데
그림자 자꾸 밟히는 봄날
행여 바람 같은 소식 하나 묻어올까
창문 너머 준 눈길 아스라한데
올봄도 진달래는 온 산에다
환희에 들뜬 연서를 마구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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