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은 또 동서양, 귀천을 가리지 않는다. 동서양 모두 5000년 전부터 암의 증세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유럽을 호령한 나폴레옹도, 중국 후한(後漢) 삼국의 패자(覇者)였던 조조(曹操)도 암으로 쓰러졌다.
한국인의 경우 4명 중 최소 1명이 암에 걸리지만 대부분은 ‘설마 나는 아니겠지’하면서 담배 술 과로 등 ‘암의 벗’들과 참 친하게 지낸다. 평소 암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다가 암에 걸리면 낙담하고 분노한다.
암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예방에 신경을 쓰면 암 발생을 줄일 수 있다. 암 환자도 자신의 병의 실체를 알면 극복에 도움이 된다. ‘암, 알면 이긴다’는 주제로 암의 실체를 짚는 시리즈를 20여회에 걸쳐 연재한다.
암의 영어 ‘Cancer’는 게(Crab)를 뜻하는 그리스어 ‘Karkin-os’에서 왔다. 히포크라테스(BC 460∼377)의 저서에 암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암조직의 표면이 게 껍데기처럼 딱딱한 데다 암세포는 게가 옆으로 기어가듯 퍼지기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었다는 것. 실제로 말기 암 환자의 장기를 꺼내보면 ‘우리 몸 속에 이런 괴물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딱딱하고 흉측하다.
한자어 ‘암(癌)’은 단단하다는 뜻이다. 1171년 중국 송(宋)의 동헌거사(東軒居士)가 지은 ‘위제보서(衛濟寶書)’라는 의서에 처음으로 이 말이 등장해서 명(明) 청(淸)을 거치면서 대중어가 됐다.
암은 밖에서 침투한 괴물이 아니다. 우리 몸의 세포마다 4만개씩 있는 유전자의 일부가 고장나서 생기는 여러가지 병 중의 하나가 암이다.
유전자 중에는 정상 상태에서 세포의 성장과 분화를 담당하는 ‘암유전자’가 있다. 이것이 고장나면 세포가 제대로 성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증식하는 발암과정이 시작된다.
한편 유전자 중에는 고장난 암유전자를 수리하거나 고장난 암유전자를 갖고 있는 세포를 죽이는 ‘암억제유전자’가 있는데 이것도 고장날 수 있다. 암은 승용차로 치면 가속페달 격인 암유전자와 브레이크 격인 암억제유전자의 고장으로 생기는 것이다.
유전자가 고장나 생기는 암세포는 정상세포로 돌아올 수 없으며 따라서 암을 치료하려면 반드시 모든 암세포를 제거해야 한다.
한 두 개 유전자의 고장으로 곧바로 암세포가 생기는 것은 아니며 여러 ‘부품’들이 함께 고장나서 비로소 암세포가 생긴다. 또 암세포가 생겼다고 곧바로 암이 발병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 암세포가 생겼을 때 인체의 방어군인 면역계가 이를 알아차리고 죽이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과정을 넘으면 암세포가 면역계의 ‘첩보망’을 벗어나서 서서히 증식하며 침윤, 전이라는 과정을 통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저용량 컴퓨터단층촬영(CT)이라는 진단법은 지름 3㎜ 정도의 폐암까지 발견할 수 있지만 대부분 지름 0.5∼1㎝, 무게 1g 이상이 돼야 알아낼 수 있다. 진단이 가능할 때는 암세포의 수가 10억개를 넘으며 이미 암세포가 증식을 시작한지 5∼20년이 지난 경우에 해당된다.
그래도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가 가능할 정도로 의학이 발전했지만 이때 발견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암은 촉진(觸診)이나 초음파 등으로는 20∼30%의 오진율을 보이며 조직검사를 해야 99%의 정확도를 보인다. 암은 자신의 증식을 위해 주변의 영양과 에너지를 빨아당기며 이를 위해 새 혈관들을 무수히 만든다. 이 때문에 암 환자는 체중이 급격히 감소한다.
또 암세포는 생명기능을 유지하는 기관에 침입해서 증식하면서 정상세포의 공간을 빼앗아버려 기능을 정지시킨다. 이 때문에 암 환자가 목숨을 잃는 것이다.
(도움말〓서울대 의대 생화학교실 전용성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