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사랑은 야채 같은 것
그대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변하겠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씨앗을 품고 공들여 보살피면
언젠가 싹이 돋는 사랑은 야채 같은 것
그래서 그녀는 그도 야채를 먹길 원했다
식탁 가득 야채를 차렸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오이만 먹었다
그래 사랑은 야채 중에서도 오이 같은 것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야채뿐인 식탁에 불만을 가졌다
그녀는 할 수 없이 고기를 올렸다
그래 사랑은 오이 같기도 고기 같기도 한 것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의 식탁엔 점점 많은 종류의 음식이 올라왔고
그는 그 모든 걸 맛있게 먹었다
결국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사랑은 그가 먹는 모든 것
<2003년>
- ▲ 일러스트=이상진
사랑도 변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사랑이니까 변한다. 사랑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나누는 가장 극진한 세상과의 교신 부호. 그러므로 변하는 게 당연하다. 살아있는 거니까. 죽은 자들의 사랑은 돌로 만든 경전 속에 영원할 수도 있지만, 살아있는 우리는 날마다 몸이 변하듯 천변만화하는 감정의 결들과 복닥거리며 살아야 하니까.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닌, 예컨대 집착이랄지 강박이랄지 하는 이름의 그 무엇이지 않을까. 따뜻하고 유쾌한 사랑학이 펼쳐지는 성미정의 시를 보라.
식탁을 차리는 여자는 영리하다. 고정불변의 사랑 같은 것에 붙잡히지 않는다. 여자는 자신의 마음이 속삭이는 사랑의 방언에 솔직하게 귀 기울인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배려와 포용으로 기꺼이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이것은 사랑만이 행할 수 있는 마법, 사랑의 열병을 앓는 사람들이 도달하는 따뜻한 긍정의 세계다. 성미정이 이 시를 쓴 것은 결혼 초기였다. 그때 시인은 식재료를 까다롭게 엄선하는 채식 위주의 여자였고 남편은 아무거나 안 가리고 먹는 남자였다. 음식에 대한 이런 상반된 태도가 사랑, 혹은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도 연결된다는 생각이 이 시의 창작 동기라고 한다.
성미정(41)의 시가 보여주는 긍정은 무턱대고 사랑을 찬미하는 자의 것이 아니다. 생활 속에서 부단히 질문하고 전복하며 도달한 긍정이다. 그는 이 뒷면을 행간에 슬쩍 눙쳐 둔다. 고통을 말할 때에도 삐삐 롱스타킹 같거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다. 그래서 그의 시편들은 블랙 유머의 기묘한 비애가 얼룩질 때에도 따스하고 다감하다. 이런, 불편한 동거의 유쾌!
반복되는 일상의 무덤덤함 속에 잠복한 불안을 주부 성모씨의 배포 좋은 능청으로 풀어놓는 〈여보, 띠포리가 떨어지면 전 무슨 재미로 살죠〉 같은 시나 '사바세계의 사람들은 고통어 자반을 즐긴다'(〈고통어 자반〉)며 고등어자반을 고통어 자반으로 바꿔치기 하는 감각은 일상 속에서 시를 건지는 시인의 낚시법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성미정의 시를 읽다 보면 그가 정말 자신의 일상을 사랑하고 있는 시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다 그 안에 숨겨진 발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처럼 유쾌하고 고맙게 긍정되는 당신! 어서 와서 성미정이 차린 삶의 개그를 맛보시라. 관념이 아닌 싱싱한 삶의 개그가 사랑스럽게 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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