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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제법 서늘한 바람이다. 황금빛 콩잎을 떨구어낸 바람이 콩 꼬투리를 살짝 벌리고 달아난다. 벌어진 콩깍지 사이로 보이는 콩알도 황금빛인 걸 보니 이제 수확을 해도 좋겠다. 깍지 속 둥근 콩알이 여물기도 여물다. 노란 콩 한 알 한 알에는 비옥한 땅과 따사로운 볕의 손길과 바람의 노랫소리가 함께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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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보름. 장 담그기 좋은 때다. 볕도 좋고 물도 깊다. 예로부터 음력 정월 말날인 오일(午日), 그믐, 손 없는 날, 병인일(丙寅日), 정일이 장 담그기 좋은 날이라 하였겠다. 메주는 노르스름한 붉은 빛을 띄고 있다. 거죽은 말라 있지만 속은 말랑말랑한 걸 보니 마침맞게 떠졌다. 미리 닦아 반질반질 윤이 나는 항아리 속에 메주를 차곡차곡 담고 소금물을 붓는다. 간수를 빼 놓은 소금과 지하 암반수로 만든 소금물이다. 좋은 물은 청명일과 곡우일의 강물, 가을철의 이슬물, 눈 녹은 납설수라 했지만, 요즘 같아서야 바위가 깊을수록 물이 맑지 않겠는가. 먼 곳에 장 담그는 어떤 이는 고로쇠 물을 쓴다고도 하고 찻물을 우려 쓴다고도 한다. 물이 맑아야 장도 맑다는 걸 아는 게다. 계란이 동동 뜨는 것이 염도도 잘 맞추었다. 숯과 대추와 고추를 띄우고 뚜껑을 덮는다. 금줄을 치고 숯과 고추를 매단다. 흰 버선본은 장을 더럽히는 귀신들을 가두어 줄 것이다. 잔설이 녹는가 싶더니 어느새 꽃잎 분분히 날리는 봄이다. 노란 산수유꽃 송화가루 바람 타고 날아든다. 날을 세지 않아도 장 가르기 할 때를 알 수 있다. 흩날리는 봄꽃들이, 볼을 쓰다듬는 햇살의 농도가 날을 알려준다. 간장과 된장을 갈라 정성스럽게 옹기에 담으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한 셈이다. 이제 모든 것은 자연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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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왜 허구헌날 장독 뚜껑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는지, 반질반질 윤이 나는 항아리를 왜 자꾸만 닦아대는지, 새벽녘이면 물 한 그릇 떠 놓고 항아리 앞에 앉는지, 아이는 알 수가 없다. 아이에게 장독대는 그저 무료함을 달래주는 놀이터일 뿐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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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을 닦는다. 독을 닦으며 시름을 놓는다. 타박네 설움도, 울컥 울컥 솟는 화도 독을 훔치며 풀어낸다. 잘 숙성된 된장. 오래전 친정어머니는 머리가 깨져도 배가 아파도 된장을 발라주곤 했지. 된장을 만병통치약으로 알고 살던 내 순박한 어머니. 벌에 쏘여 퉁퉁 부은 얼굴에 된장 바르던 기억에 절로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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