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해역 완도에서 찾은 조개의 제왕, 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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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은 궁중 연회식에 단골로 등장할 만큼 고급 식재료였다. 예나 지금이나 아플 때 어머니가 끓여주시는 전복죽 한 그릇은 몸은 물론 마음까지 가뿐하게 치유해주는 명약과도 같은 영양식이다. 자연산 전복이야 1년 열두 달 바다에서 딸 수 있지만, 산란기 전인 지금이 가장 맛이 좋다. 게다가 청정해역 완도에서 해녀가 딴 전복이니, 오독오독한 질감과 비릿하면서도 달큼한 그 맛을 무엇과 비교하랴. |
명절을 앞둔 백화점 선물 코너에는 멋스럽게 포장된 자연산 전복 세트가 고고한 자태로 진열돼 있는가 하면, 집 앞 골목에서는 해산물 장수가 트럭 한 가득 전복을 싣고 와 ‘자연산 전복을 싸게 드린다’고 스피커를 쩌렁쩌렁 울려대며 양식 전복을 팔기도 한다. 갑자기 전복 구경하기가 쉬워진 이유는 바로 전복 양식이 활성화되면서 생산량이 급증했기 때문. 해양수산부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전복 생산량은 2002년 1백34톤에서 2003년에는 1천1백38톤으로 늘었고, 2005년에는 2천1백98톤, 2006년에는 2천9백33톤으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4천5백 톤을 능가할 예정. 전복의 먹이인 미역, 다시마 등의 해조류 생산이 가능한 진도, 해남, 흑산도, 하의도 등 주로 서남해안 일대에서 해상 가두리 양식으로 전복이 생산되는데, 그중 70%는 완도산이다. 덕분에 자연산에 비해 거의 절반 정도의 ‘착한’ 가격으로 전복을 즐길 수 있고, 고맙게도 맛과 영양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제아무리 양식이 자연산 못지않다 하더라도 자연이 키운 것에는 특유의 기운이 넘치게 마련이다. 비교해보면 색깔도, 육질도, 맛도 엄격히 구별된다. 해녀가 직접 물질을 해서 따온 자연산 전복을 찾아 완도군 신지도로 향했다. 재작년 말 완도와 신지도 사이에 연도교가 놓인 이후 고운 모래로 유명한 신지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을 찾는 이들이 다섯 배나 늘었다는 기사를 인터넷에서 접한 뒤였다. 대체 얼마나 멀고도 외진 섬이었으면 조선시대 정약전의 첫 유배지로 선택됐을까? 불과 얼마 전까지도 뱃길만이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그곳을 이제는 자동차로 단박에 도달할 수 있다. 신지도의 동쪽 끝에 있는 동고리는 완도에서도 손꼽히는 자연산 전복 산지다. 해수욕장 옆 선착장에는 해녀 차봉덕(59세) 씨와 김영자(57세) 씨가 물질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톨릭 사제들이 경건하게 제의를 갖춰 입듯, 곧 바다속으로 몸을 던질 해녀들도 의식을 수행하듯 검은색 고무옷을 순서대로 입고 물갈퀴와 수경까지 착용한 뒤 입수 채비를 마친다. 우리나라 전체 해역 중 전복이 필요로 하는 영양분이 가장 풍부하다는 완도 청정 바다. 그 속으로 자맥질해 들어간 해녀가 잠시 후 손에 전복을 들고 수면 위로 얼굴을 내민 뒤 가쁜 숨을 내쉰다. 전체 전복 생산량 중에 0.1%나 될까 말까 한, 그만큼 희귀하다는 자연산 전복이다. 중국의 진시황제가 불로장생을 위해 먹었다는 전복은 조개류의 제왕답게 지방질은 적고 단백질은 풍부하며 비타민, 무기질이 많아 성장기 어린아이에게 좋고, 노인의 신경쇠약, 간기능 개선 등에도 효과가 있다. 또 산모의 젖을 잘 나오게 해줄 뿐만 아니라 스태미나 증진에도 탁월하다. 전복은 특히 글루탐산, 글리신 등의 성분이 있어 감칠맛과 달콤한 맛이 난다. 산란기는 11월이므로, 산란기 전인 8~10월이 제철이고 겨울에는 살이 빠져 맛이 좋지 않다. 어떤 이는 전복을 두고 ‘젊어서 먹어야 하는’ 식품이라고도 한다. 산 전복을 회로 먹을 때 오독오독 씹히는 질감이 단단하기 때문에(콜라겐과 엘라스틴 같은 경단백질이 많아 살이 단단한 것) 이가 튼튼할 때 많이 먹어둬야 한다는 의미. 오독오독한 질감은 여름보다는 겨울철에 더 잘 느낄 수 있는데, 여름에는 콜라겐 함량이 낮아지고 수분 함량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찜, 죽, 조림 같이 익히는 요리에는 육질이 연한 수컷(노란빛)이 좋고, 생식용으로는 수컷에 비해 크기는 작지만 몸이 오톨도톨한 암컷(푸른빛)이 좋다. 전복 내장에는 여러 가지 영양성분이 많이 함유돼 있고 독특한 해조류의 맛이 느껴져 별미로 치는데, 봄 전복의 내장에는 독성이 있으므로 3~4월에는 먹지 말아야 한다. 요즘 전복이 더 인기 있는 이유는 ‘후코이단fucoidan’ 성분 때문이기도 하다. 성인병 예방과 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후코이단은 해조류의 점액에 함유되어 있지만 생미역이나 다시마를 아무리 많이 먹는다 한들 인체에는 소화 흡수되지 못하고 체외로 배출돼버린다. 단, 해조류를 먹고 사는 전복의 소화기에는 후코이단을 소화할 수 있는 효소가 있어 전복을 먹으면 후코이단을 온전히 섭취할 수 있다. 배 위로 올라온 해녀들의 망태기 안에는 아이 손바닥만 한 자연산 전복과 밤송이처럼 삐죽삐죽 생긴 성게가 담겨 있다. <현산어보>에서는 성게를 ‘율구합’이라고 불렀는데, 당시 사람들 역시 성게를 밤송이에 비유했다는 게 재미있다. 몸 전체가 검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짙은 보라색을 띤 ‘보라성게’는 8~9월 바다 수온이 올라가면 산란기를 맞는다. 해녀들이 성게에 칼집을 내서 반으로 쪼개니 노란 알(생식소) 네 덩어리가 들어 있다. 찻숟가락으로 알을 조심스럽게 떠내 거뭇한 내장은 제거하고 바구니에 노란 알만 모은다. 성게를 잡으면 이 생식소 부분만을 따로 떼어서 먹는데, 독특한 풍미가 있어 미식가들이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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