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저 높푸른 하늘 / 박정만

추억66 2010. 10. 25. 09:50

     

                                          

 

 

저 높푸른 하늘 / 박정만


저 높푸른 하늘이 있었는지 나는 몰라

그것은 나에게 군말만 있었기 때문,

이제 철 지난 눈으로 저 하늘의 푸른 땅을 보나니

버리라 하면 다 버릴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만 기다려보자.

왜 생의 한나절은 내게 없으며

걸어가는 길섶에는 좋은 꽃도 없는지.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아, 이제 알겠어.

나는 언제나 되돌아오는 나그네가 되고 싶었지.

바람과 달과 구름은 끝이 없는데

난 그저 오금 박힌 걸음으로 걸어온 거야.

 

저 높푸른 하늘을 좀 봐,

세상의 물그림자가 수틀처럼 걸려 있어.

미리내는 한 별을 이 땅에 주고

별은 다시 또 하늘로 솟구쳐 날아오르지.

 

아무렴 저 꼭두서니 빛을 보라니까.

저녁 산의 이마 위에 

높푸른 하늘의 맑은 빛이 마냥 걸려서

내 꿈과 저승길로 걸어오는 걸.

걸어와서 슬픔의 한 빛깔로 물드는 것을

 

그래도 아직은 이것이 아닌 것 같아.


- 시집<혼자 있는 봄날/1988, 나남> 중에서

 

 

 출판사 고려원의 편집장 시절인 1981년 ‘한수산 필화사건’에 휘말려, 이때 당한 고문의 후유증인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술로 견디다가 결국 1988년 서울올림픽이 끝나던 날 간경화로 숨진 박정만 시인의 시다. 현실과의 타협을 포기하고 마지막까지 시인이기만을 고집했던 그가 죽기 전 1987년 단 20여 일만에 무려 300여 편의 시를 신들린 듯 쏟아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시도 그 무렵에 쓴 것이다.

 

 시의 틀은 짙은 서정성으로 장착되어있는데 정작 내용은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며 소외와 탄식과 절망을 독백조로 노래했다. 그의 유고시집에서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라는 문장에 오래 머물렀던 기억과 그와 관련된 하고 싶은 말을 끄집어내고 싶지만 말이 늘어질까 싶어 참는다. 그리고 오늘은 한글날, 대신 좀 다른 이야기로 마무리 한다. 

 

 ‘미리내는 한 별을 이 땅에 주고’라고 한 시구. 그 가운데 ‘미리내’란 시어. 문화부가 얼마 전 전국 1500명을 상대로 조사한 주관식 설문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우리말로 '사랑' 다음에 꼽은 낱말이다. 그런데 정작 이 ‘미리내’라는 낱말이 수록되지 않은 국어사전이 있는가 하면 워드의 자동맞춤법 기능에서도 빨간 밑줄이 그어진다. 은하수의 제주 방언으로 알려진 탓일까. 변화된 현실의 언어를 반영한다면서 ‘악플’ ‘얼짱’등은 사전에 잽싸게 끼워 넣는 마당에 도무지 이해불가이며 못마땅하다. 

 

                                                                        ACT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