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간식·먹거리
연초록 봄을 캐자, 향긋한 봄을 먹자!
추억66
2008. 3. 21. 09:31
쑥쑥 목구멍을 타고 국물로 흘러들어와 햇빛 한 아름 불러들이고 있음이야 아, 맛있다! 생기나게 하는 이 초봄의 쑥국 맛, 들녘에서 먼저 눈 비비고 깨어나 꽃샘추위로 고독을 달군 이 향긋한 내음이며 차가운 빗물이랑 해와 달과의 고적한 기억을 갇춘, 혹은 그 견고한 사랑을 풀어내는 쑥국 맛 참 맛있다! -김길나 '쑥국' 모두 지금, 가까운 들녘에 나가보면 곳곳에 밟히는 게 파아란 쑥이다. 마치 어린 쑥들이 '어서 날 캐 가주' 하며 마구 어리광을 부리는 것만 같다. 여기저기 고개를 삐쭘히 내밀고 빼곡히 올라오는 어린 쑥을 바라보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진종일 캐고 싶다. 쑥을 캘 칼이 없어도, 쑥을 담을 바구니가 없어도 좋다. 그저 밭둑에 퍼질러 앉아 손으로 봄내음 물씬 풍기는 쑥을 뜯으며, 그 쑥을 키워내는 봄 들판의 향기론 흙내음을 코끝 싸하도록 맡고 싶다. 저만치 밭둑에 옹기종기 앉아 밭고랑을 일구며 씨를 뿌리고 있는 아낙네들처럼 봄볕에 까맣게 그을리고 싶다. 이대로 쑥내음에 흠뻑 젖다가 마침내 봄이 되어버리고 싶다.
어릴 적 나는 들판에 쑥쑥 올라오는 쑥을 따라 봄이 오는 줄 알았다. 그 쑥을 캐서 향긋하고도 구수한 쑥국을 먹어야 마을 앞 개나리와 앞산의 진달래가 앞 다투어 피어나는 줄 알았다. 그때 우리 마을사람들이 쑥털털이라 부르는 쑥버무리를 먹어야 지난 겨울방학 때 꼭꼭 밟아놓은 보리가 연초록 대를 쑥쑥 밀어올려 보리풍년이 드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눈을 몇 번이나 비비며 들녘 이곳 저곳을 살펴보아도 옹기종기 모여 앉아 쑥을 캐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쉬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 아낙네들 곁에서 냉이와 달롱개를 캐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는 더더욱 찾기 어렵다. 쑥은 저리도 쑥쑥 자라 사람들을 애타게 부르고 있지만 사람들은 눈도 깜짝하지 않는 것만 같다. 그만큼 먹고 살기가 좋아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들판에 흔히 자라는 쑥 따위의 풀들은 이제 먹지 않아도 먹거리가 남아돌기 때문일까. 하긴,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끼니 한 끼를 떼우는 것이 일종의 화두였다. 특히 오뉴월 보릿고개가 다가오는 사월이면 보리수확을 할 때까지 한 톨의 양식이라도 아껴야만 했다.
예로부터 쑥은 우리 민족의 삶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중요한 먹거리이자 훌륭한 약재였다. 한방에서 쑥은 '애엽'(艾葉)이라 하여 한약재에도 빠지지 않고 들어가며, 뜸의 재료로도 널리 이용했고 지금도 이용하고 있다. 쑥을 말려 뭉쳐서 혈자리에 놓고 태우면 쑥의 온기가 혈자리를 타고 들어가 몸 속의 병을 치료하게 한다는 것이다. 옛 의서 <본초강목>에 따르면 쑥의 성질은 "날 것은 차고, 말린 것은 열하다"며 "음력 3월 초와 5월 초에 잎을 뜯어 햇볕에 말리는데 오래 묵은 것이라야 약으로 쓸 수 있다" 고 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쑥은 사람의 몸을 따뜻하게 하고 피를 멈추게 하는 것은 물론 몸이 약하고 차서 오는 여성의 냉증, 월경불순 등에 특히 좋다고 한다.
쑥국은 뭐니뭐니 해도 지금 새로 돋아나는 어린 쑥을 캐서 곧바로 국을 끓여먹는 것이 향긋하고 구수하다. 특히 요즈음 돋아나는 어린 쑥에는 비타민A와 C, 철분 등이 많이 들어있고 쌉쌀한 맛까지 느껴지기 때문에 맛이 아주 좋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봄철 잃어버린 입맛을 돋구는데 쑥만한 게 없다고 했지 않겠는가. 쑥국을 끓이는 법은 아주 간단하다. 다른 음식처럼 그다지 많은 재료도 들지 않는다. 그저 어린 쑥(음식은 정성이 반이라 했으므로 들녘에 나가 직접 캔 어린 쑥이라면 더욱 좋다)과 모시조개, 된장, 들깨가루, 멸치 다싯물, 갖은 양념재료만 있으면 그만이다. 만약 들깨가루를 구하기 힘들다면 콩국수를 할 때 쓰는 콩가루를 써도 된다. 쑥국을 끓이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어린 쑥을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뒤 들깨가루를 뿌려 버무려야 한다. 이때 쑥국의 향긋하고 담백한 맛을 즐기려면 쑥에 들깨가루를, 구수하면서도 진한 국물맛을 즐기려면 쑥에 콩가루를 섞는 것이 좋다. 그리고 미리 끓여둔 다싯물에 쑥과 조갯살을 넣고 센불에서 팔팔 끓인 뒤 갖은 양념을 넣고 한번 더 살짝 끓여 간을 맞추면 끝.
맛 더하기 둘. 향긋하고 감칠맛 나는 쑥국을 한 냄비 끓이고도 쑥이 조금 남았다면 아이들 간식용으로 쑥버무리도 한번 만들어 보자. 쑥버무리를 만드는 방법은 쑥국보다 더 간단하다. 씻어 물기를 뺀 쑥에 쌀가루와 소금을 약간 뿌려 버무린 뒤 찜통에 넣어 푹 찌기만 하면 그만. 이때 아이들의 입맛을 위해 설탕을 조금 넣으면 맛이 더욱 좋다. 쑥국을 끓일 때 특히 주의할 점은 너무 오래 끓이지 말라는 것이다. 쑥국을 마치 곰국 끓이듯이 중간불에서 오래 끓이면 쑥의 빛깔이 누렇게 변한다. 국에 든 쑥의 빛깔이 누렇게 변하면 언뜻 보기에도 입맛이 툭 떨어지지만 쑥국 본래의 맛 또한 사라진다. 그러므로 파아란 빛을 띤 쑥국을 제대로 끓이려면 센 불에서 재빨리 끓여내는 것이 조리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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