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우기

그림으로 꾸민방

추억66 2009. 11. 26. 09:57

엄마와 아이의 작품을 함께 전시한다

 

 

초등학교 1학년 석현이(8세)의 공간은 다른 친구들의 방과 무척 다르다. 다른 집이라면 책이나 참고서가 가득 꽂혀 있어야 할 책상 위에 책 대신 석현이가 직접 그린 그림과 스타일리스트이자 동화책 작가인 엄마의 작품이 즐비한 것. “자기 그림으로 방을 장식한다는 건 아이에게 큰 의미가 있어요. 자기의 그림이 하나의 작품이 되니까 그림 그리기나 만들기를 더 재미있어하고 의미 있는 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이 그림 옆에 엄마가 직접 만든 펠트 작품도 함께 놓아뒀다. 석현이가 그 작품을 보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도 구상할 수 있고, 자신을 떠올리며 작품을 만든 엄마의 정성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이지영씨. 그래서일까. 석현이는 참 따뜻하고 온화한 감성을 지닌 아이로 커가고 있다. 그저 공부만 잘하는 아이가 아닌, 행복한 아이로 커가는 석현이가 참 보기 좋았다.

 

 

동심을 테마로 작품을 컬렉팅한다

 

 

재호(3세)네 집에는 눈길이 멈추는 곳곳에 멋진 작품들이 하나씩 걸려 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남편과 구경 삼아 미술관을 찾곤 했던 오다정씨는 아이가 생기고 나니 귀여운 느낌의 그림이나 조각이 좋아져 하나씩 구입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초보 컬렉터가 되었다. “다양한 온·오프라인 옥션을 통해 작품을 구입해요. 미술품 컬렉팅이라 해서 후에 큰돈이 될 만한 작품을 찾아내는 게 아니라, 아이의 감성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림을 찾고 있어요. 동심을 테마로 작품을 구입하다 보니 귀엽고 깜찍한 느낌의 작품이 대부분입니다.” 아직 재호가 어려서 그림에 대해 특별한 반응을 보이진 않지만, 작품 컬렉팅을 위해 아이와 함께 미술관이나 전시회장을 찾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그녀. 덕분에 재호는 어린 시절부터 관람 문화를 배우게 되는 장점도 있단다. 요즘은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턱없이 비싼 옷이나 육아용품을 사는 엄마들도 많다. 하지만 아이의 감성을 길러주기 위해 오다정씨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작품을 골라 선물하는 것이 아이에게 훨씬 행복한 일이 될 거란 생각이 든다.

 

 

아이와 함께한 전시회의 도록으로 꾸민다

 

 

겸이 엄마 강유진씨는 학교 선생님을 거쳐 현재는 아동 미술을 공부하고 있는 열혈 주부. 그녀는 시간이 날 때면 겸이(6세), 령이(4세)와 함께 다양한 전시회장을 찾아 관람하고, 그곳에서 구입한 엽서나 도록 등을 이용해 아이 방을 꾸미고 있다. “처음에는 포스터를 사서 아크릴 액자로 만들어줄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집 안에 못질하는 것이 싫어 다른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죠.” 강유진씨는 다양한 크기의 엽서나 도록을 도톰한 검은색 도화지에 붙여 액자처럼 만든 후 그것을 아이 방이나 베란다 창문 등에 붙였다. 그랬더니 작은 그림 하나하나가 아이들이 손쉽게 만질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가끔씩 테이프의 접착력이 약해져 그림이 스르르 떨어질 때도 있지만 아이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낙엽이 지는 듯하다며 재미있어한다. “포스터 등으로 만든 액자는 작고 가벼워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손쉽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아요. 그리고 아이들이 미술이란 것을 무겁고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늘 생활 주변에 있는 것으로 느끼게 된 것도 큰 장점이고요.” 함께 전시회를 구경하고 도록 액자를 만드는 시간 동안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더욱 친밀해질 수 있다.

 

 

명화 액자로 아이 방을 장식한다

 

 

인하(7세)가 막 세 살이 되던 해, 엄마 김정애씨는 아이에게 유명 작가들의 그림이 수록된 책을 사주었다. “동네 아줌마들이 좋다기에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따라 샀어요. 그런데 아이가 이전 책에 비해 새 그림책을 훨씬 좋아하더라고요.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하루에도 몇 번씩 가져와 읽어달라고 졸랐어요”. 처음에는 인하가 동화책 내용을 재미있어한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런 게 아니더란다. 엄마가 해주는 이야기보다 동화책 속의 그림에 더욱 관심이 있었던 것. 그래서 다음에는 아이들이 보기 쉽게 만든 명화 그림책을 하나, 둘씩 사주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어른들에게는 무척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명화가 인하에게는 자연스레 친숙한 것이 되었다. 요즘은 인터넷에서 판매하는 저렴한 명화 카피 액자를 여러 개 사서 아이와 함께 상의한 후 방에 걸어준다. 작품을 바꿀 때마다 아이와 함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 좋다는 그녀. 고전 명화는 그림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자료가 다양해서 엄마가 조금만 시간을 내 공부하면 아이에게 전해 줄 수 있는 이야기도 많다. 고전 명화를 이용한다고 해서 김정애씨가 딸 인하에게 바라는 것이 미술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다. 그저 제대로 된 작품을 보고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다.

 

 

 

배수은 / 프리랜서

사진 박재석 / studio lamp